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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중세 말 위기 속에 꽃피운 문화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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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습
르네상스, 중세 말 위기 속에 꽃피운 문화와 사상
  • 출판사유레카엠앤비
  • 잡지명유레카

르네상스? 지식냥 교양이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뭔데? 라고 물으면 그리스·로마 문화가 부활한 시기로 인간 중심 사상이 싹텄고’, 라고 말하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

교양이는 르네상스에 대한 교양이 부족한 자신에게 실망했다.

20233, 오세훈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2.0’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한강의 접근성을 높여서 관광 명소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한강 남북단을 잇는 공중 곤돌라를 만들고, 한강 조망을 할 수 있는 대관람차를 세우고, 노들섬을 예술섬으로 조성할 것이라는 상세한 계획들은 모두 한강 르네상스를 위해서다. 르네상스라는 용어는 이와 비슷한 의미로 꽤 많이 쓰인다. 침체된 국면을 타개해 새롭게 부흥하리라는 슬로건 혹은 모토로.

 

르네상스는 14세기 말에서 16세기 말1350~1550, 인문·예술·정치·철학·종교 등 전 영역의 변화를 이끈 뚜렷한 하나의 경향으로 보통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 그만큼 르네상스의 폭이 넓고 깊어 쉽게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현대의 우리는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재발견해 화려하게 부흥시킨다는 의미로 주로 쓰는데, 가벼운 맥락에서 보면 그럴 만한 점이 있다. 중세 말기 유럽은 매우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이 무렵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사상을 재조명한 문예부흥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인간 중심의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중세 말 위기의 유럽, 새로운 세계로 향하다

인류가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하던 무렵, 중세 말기의 유럽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흑사병이었다. 1347~50년 첫 유행기(3) 동안 유럽 인구의 최소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이 흑사병으로 죽었다. 끔찍하고 참혹한 재앙이었다. 농산물이 들판에서 썩어나갔고, 제조업은 중단됐으며, 모든 교역이 멈췄다. 흑사병의 여파가 유럽의 사회·경제 전반에 미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한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시기적으로 이때를 중세의 출발로 삼는다) 거의 천 년 동안 유럽에서는 모든 가치의 척도에 신이 존재했다. 철저히 신 중심의 사회였고, 교회 혹은 교황의 권력은 왕권과 치열하게 다퉜음에도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11세기 무렵부터 200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십자군 전쟁을 치르면서 교황권은 약화하고, 왕권이 강화되었다. 그 와중에 흑사병이란 끔찍한 공포를 겪자 사람들은 신의 존재와 은총을 의심했고,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종말론을 믿는 이들도 늘어났다. 또한 교회 내부에서는 권력을 둘러싸고 대분열이 일어나는 등 중세 사회를 지탱해 온 로마 가톨릭교회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크고 작은 반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국가 간의 전쟁도 치열했다. 이 시기의 국가 개념은 지금과 매우 다르다. 몇 개의 왕조가 유럽 전역을 분할해서 통치하던 시대였고, 단일 국가라고 해도 몇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이었다.

 

덧붙여 십자군 전쟁 이후 무역이 활발해 도시가 발전하면서 상업 발달을 촉발했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졌다. 유럽 사회는 더 이상 과거의 관점으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자각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세계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던 이행기, 중세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던 그 시기에 그동안 인류가 축적해 온 지성과 문화가 하나의 경향성을 갖고 분출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1350~1550년에 이탈리아에서 등장해 그 후 16세기 전반기 동안 북유럽으로 확산된 사상과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의 일정한 경향을 표현한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_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

 

 

르네상스의 뜻과 르네상스 정신

재생’ ‘부활이란 뜻의 르네상스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술사학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예술가 조르조 바사리1511~74. 그는 자신의 저서 미술가 열전서문에서, 미술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며 고대를 모방해 찬란한 재건을 꿈꾼 15세기를 리나시타Renascita라고 지칭했다. 이탈리아어로 리나시타는 소생혹은 재생이란 뜻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유명한 말을 한 사람이 조르조 바사리다.

 

르네상스의 시작과 부흥을 이끌었던 것은 이탈리아였지만, 안타깝게도 리나시타라는 이탈리아어 대신 프랑스어 르네상스가 대중화됐다. 1855르네상스라는 프랑스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다. 이후 1860, 스위스 역사가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영향력 있는 책으로 평가받으면서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었다.

 

르네상스라는 개념은 14~16세기 이탈리아 저술가들이 처음 사용했는데, 이들은 고대 이후(5세기경) 자신들의 시대까지 1,000여 년 동안 단조로운 어둠 속에 끼어 있었고, 이 암흑의 시대에 예술과 문화 등 문명의 발전이 멈췄다고 비판했다. 과연 르네상스는 이 암흑을 밝히는 이었으며, 중세를 암흑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르네상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한 논쟁 중 하나다. 또 하나 르네상스를 중세와 근세 사이의 시대 구분으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도 여러 논의가 있다. 이에 대해 그 경계가 불분명해 시대 구분보다는 유럽 지성사와 예술 문화사의 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연구하면서 당대 수많은 사상가와 문학가, 예술가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이었다. 전통적인 교리와 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하는 이 새로운 사상적 흐름은 근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십자군 전쟁 :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1095~1291), 여덟 차례에 걸쳐서 서유럽의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진영에 있는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감행했던 대원정을 말한다.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해서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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