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_ 웃긴 아내를 만나다 / 김명식,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

 

이선영, 재미난 얘기 좀 해주세요, 하면 내 아내는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오래전 친구 얘기 혹은 최근 신문에서 본 얘기 등 재미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내가 주로 얘기를 하고 내 아내는 들어준다. 내 이야기는 대부분 지루하고도 심각하다. 속상한 이야기, 일 이야기, 사회에 관한 이야기. 그래도 이선영은 잘 들어준다. 그리고 가끔 추임새도 넣어 나의 정의감 넘치는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얘기를 서너 번 하고 나서야, 당신 그거 지난번에도 한 얘기예요, 하는 걸 보면 굳이 내 얘기를 다 새겨듣는 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만남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 만남들을 더듬어 보았다. 참 소중한 만남이 많았고, 그 만남들이 나의 삶을 살찌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좋은 만남 중,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제일 생각나는 나의 만남은 아내와의 만남이고, 그에 대해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첫 문단을 써보았다. ‘쓸 만하겠군.’ 하지만, 자신 있게 수락하고 나서 글을 이어가자니 글이 막힌다. 글이란 어떤 주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과연 아내와의 만남에 무슨 주제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렵게 이 사람을 만났고 30년을 살았지만, 결코 매일을 알콩달콩 산 것도 아니고 무슨 인생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고, 서로 편할 때보다는 불편할 때도 있었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기도 했지만, 그 어려움이 익어가도록 그저 방치해 놓은 날들이 많았다. 나와 아내는 불란서 영화처럼 이게 주제가 있는지 없는지, 언제 시작을 했는지 그리고 언제 끝난 건지 모르는 그런 삶을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굳이 이런 얘기를 왜 쓴다고 했을까?

그런 연구가 있었다. 왜 생명체는 암-수가 있어서 그들의 결합에 의해서 새 생명을 만들어 낼까? 혼자 새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짝짓기를 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고생 몸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세상 많은 생명체는 종족보존을 짝짓기로 하게 되었을까? 생물학적 연구결과는 이렇게 해야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 개의 유전자보다는 두 개의 유전자가 만나 적응력 있는 새로운 개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셋이 만나 새 생명을 낳게도 만들 수 있었겠으나 그럼 셋이 만나게 되는 확률이 둘이 만날 것보다 훨씬 적어서 종족 보존에 최적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물학적 종족 보존의 최적화가 사람들을 어렵게도 하고 즐겁게도 하나?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대학교도 같이 다녔다. 그리고 지난 2월이 결혼 30주년이었으니 참 오랫동안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친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지낸 건 4~5년 밖에 되지 않는다. 우선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우리는 선후배 사이였고, 촉이 없는 여자 이선영은 나의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몰랐다고 한다. 소심한 남자인 나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보이면 당장에 차일 것 같아 감히나의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학 때는 발신인 없이 500통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보내는 사람을 숨기기 위해 타이핑을 해서 매일매일. 무심한 여자와 소심한 남자의 웃기는 사랑 이야기는 500통의 편지 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사실은 그게 나였어.’ ‘, 선배님부담스러워 만나지 못하겠네요. 감사했습니다.’ 정도의 에피소드로 끝날 뻔했다.

그 후 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내가 유학한 80년대 중반은 지금보다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인터넷도 없어서 5000마일의 거리가 마음과 몸을 엄청나게 멀게 느끼게 하던 때였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는지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고, 또 다른 에피소드 끝에 삶을 같이 하게 되었다.

요즘은 저녁 먹은 후에 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일찌감치 잠들고, 주말에는 가까운 교외로 드라이브 가는, 별다른 취미도, 흥미로울 것도 없는 삶을 산다. 그래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신이 난다. 집에 갈 시간이 가깝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나의 아내 이선영이 있다. 당신을 뭐라 부르면 좋겠어요? 예쁜 사람, 멋진 사람? 살림 잘 하는 사람? 내 아내는 대답한다. 웃긴 이선영이라 불러주세요. 난 웃긴 사람이라 불리는 게 좋아요.

내가 어렸을 때, 먼발치서 보던 소녀는 나보다는 성숙한 1년 후배였다. 젊었을 때, 가슴앓이 하면서 안 그 여자는 멋진 퀸카였다. 신혼 때는 눈부신 여자와 살게 된 것에 감사했다. 어디든 데려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았고 나는 겉돌았다. 많은 시간들을 그렇게 물과 기름처럼 살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흐른 시간들은 나를 성숙한 것처럼 보이게 했고, 숨을 한 번 고르게 했다(‘은 아니지만, 조금 자주’). 이선영은 이제 내 옆에서 웃긴 사람이 되었다. 재미난 얘기를 해달라면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편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 나는 늘 그랬던 이선영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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