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세컨드뮤지엄, 두 번째 이야기들 / 홍소영, 세컨드뮤지엄 대표·공예가

 

재미난 手作

 

세컨드뮤지엄, 두 번째 이야기들

 

홍소영, 세컨드뮤지엄 대표·공예가

 

잘 무두질 된 질 좋은 가죽에서는 묵직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배어난다. 가죽과 잘 어울리는 리넨사를 골라 골고루 밀랍을 바르고, 새들러 바늘 두 개에 실을 꿰어 매듭을 짓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프(Griffe)라는 도구와 망치를 이용해 미리 가지런히 내놓은 바늘구멍의 길을 따라 바느질을 시작할 차례다. 왼쪽에서 한 땀, 오른쪽에서도 한 땀, 순서와 방향을 지켜 오른쪽과 왼쪽 바늘을 교차시키고 양쪽으로 얽힌 실을 같은 힘으로 잡아당긴다. 가죽의 앞뒷면을 함께 튼튼하게 꿰매는 이 방법을 새들스티치(Saddle stitch)’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가죽으로 말안장을 만들 때 사용되던 바느질에서 유래되었다. 질 좋은 염소 가죽의 아름답게 염색된 색깔, 탱탱한 탄력과 말랑하고도 촉촉한 감촉을 한껏 즐기며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새들스티치를 한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바느질 모양이 비뚤어지고 만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잡아당기기.

그렇게 한 땀, 한 땀, 또다시 한 땀, 어느새 바느질이 완성되어 간다. 모르는 사이 시간이 훌쩍 흘렀다. 각각의 가죽 조각들이 이어져 입체적인 구조가 완성되었다. 벌써 제법 그럴듯하다. 바느질을 마치면 단면에 마감재를 바르고 사포로 다듬고 또 바르고 기다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완성까지는 이처럼 많은 과정이 있지만 순서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멋진 작품이 완성된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죽제품. 가방, 지갑, 필통 등등. 가까이 두고 매만지며 쓰면 쓸수록 길들어 세월과 함께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누군가의 애장품이 될 것이다.

작품과 제품 사이 어디쯤을 지향하는 내 공예 생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 같다.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예닐곱 살의 나에게 엄마의 재봉 상자는 마치 보물 상자 같았다. 색색의 실들, 예쁜 단추들, 핀들, 고장이 난 장식들. 그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낮잠이 든 엄마 몰래 상자를 열어 바늘에 실을 꿰고 무얼 할까 골몰하다가 입고 있던 치마 한쪽을 아무렇게나 꿰매보았던 그날부터 나는 만드는 것, 잇는 것, 구조를 완성하는 것의 특별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작은 인형 옷이며 소품으로 시작해 필통이나 가방을 만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옷이나 장신구, 라이프스타일 소품 등을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편집자로, 카피라이터로, 기획자로 바쁜 속에서 나를 숨통 트이게 해준 것도 바로 뭔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일상에서 골몰해온 첫 번째가 일이라면, 두 번째는 손으로 만들기다. 패브릭, 가죽, 종이, 나무, 금속 등 새로운 소재들은 늘 나를 현혹하고, 거기에 기꺼이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가죽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접하게 된 세계다.

물성을 이해하고 다루어 뭔가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내게 가죽은 끝없이 흥미진진한 소재다. 인류 역사 이래 의복과 장신구의 가장 오래된 재료. 고대 이집트의 가죽신발에서 벌써 무두질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하니 동물이 죽어 사람에게 남긴 가죽이라는 소재에 대한 탐구는 오랜 시간 동안 또 얼마나 발달했을까. 그만큼 흔하면서 흔치 않고, 품질과 가격의 편차가 수십 수백 배에 달하며, 완성도 역시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과 손끝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가죽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닳도록 쓰는 내 개인적 취향에도 가죽은 아주 잘 맞는 소재다. 질 좋은 가죽과 부자재를 고르고 조심스러운 재단과 정확한 망치질, 바느질과 정성스런 마감까지. 향기와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세심하게, 장인()마음을 느껴본다. 가죽을 만진 지 10년도 안 되었으니 장인의 손기술은 따라갈 수 없겠지만, 마음가짐은 누구라도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작은 세계의 신이 되는 기분을 매번 느낄 수 있는 멋지고 훌륭한 경험이다. 때론 유용하고 때론 무용한 것을 만들면서 거기에 자신의 취향을 담아보는 일. 그것이 자기만족을 넘어 타인의 인정까지 받게 된다면 더할 나위없는 행복일 것이다. 이런 만족감. 이런 기분, 이런 시간의 소중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일상의 한 부분을 뚝 떼어 뭔가 만드는 데 쓴다면 일생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 사회도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궁리를 하다가 사람들과 작업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워크숍 공간도 열게 됐는데, 세컨드뮤지엄이다. 이곳에서 나는 고심하며 내가 경험한 좋은 재료를 골라 마음에 드는 견본 작품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만드는 시간의 즐거움을 풀어놓는다. 작품과 제품 사이 어딘가를 지향하는 나의 공예 생활은 그렇게 오랜 취미이자 두 번째 일이 되었다. 세컨드뮤지엄 워크숍의 분위기는 활기차면서도 늘 작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바느질 한 땀, 지금 여기 눈앞의 한 땀 한 땀에 열중하는 그들의 눈은 생기 있게 빛나고, 입매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표정 역시 비슷하리라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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