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사랑의 빚 /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설레는 만남이 있고 두려운 만남이 있다. 긴 여운을 남기는 만남이 있고 눈 녹듯 스러지는 만남이 있다. 서로를 윤택하게 하는 만남이 있고 삶을 황폐하게 하는 만남이 있다. 생명을 얻는 만남이 있고 죽음에 이르는 만남이 있다. 인생은 만남의 시작이고 죽음은 만남의 종언이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만남은인생의 갈림길이다. 누구를만났기에 나는 지금 여기 있는가? 만남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새벽마다 교회를 나가는 아내를 붙들겠다고 교회 문을 들어섰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끌었다. 내 인생을 BCAD로 갈라놓았다. 그는 만남을 이어가는 내내 봄기운처럼 따뜻하게 다가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기더니 끝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멀쩡한 직업을 뒤로하고 나이 쉰셋에 신학교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그분의 오랜 기도 덕분이다.

하용조 목사님은 2011년에 당신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예수님 품에 안기셨다. 그분과의 만남은 15년에 걸친 것이지만, 그 만남은 영원에서 영원까지임을 깨달았다. 영원을 소개했고 영원에 뛰어들게 했고 영원을 누리도록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신 까닭이다. 모나고 거친 나를 안아주셔서 가파른 호흡을 가다듬어 주셨다.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심으로써 종교의 길에서 길을 잃어버릴 뻔했던 나를 생명의 길로 돌이킬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셨다.

 

그분과의 대화는 때로 선문답 같았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아무 수식어가 없는 단답을 들려주셨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입니다.”

목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괴물입니다.”

그 답을 품고 신학교를 다녔고, 나 자신이 제도 아닌 교회가 되기 위해 그리고 괴물 아닌 제자가 되기 위해 위태로운 걸음을 옮겼다. 수없이 넘어졌고 이런저런 상처가 났지만그분이 당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가끔 세간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쓴웃음을 짓는다. 세상이 아직도 교회 아닌 교회를 보고 흥분하고 목사 아닌 괴물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 때문이다. 세상은 진리보다 늘 소문에 관심이 크다. 세상은 언제나 선행보다 악행의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그분을 통해 예수님을 알기 전에 그 세상의 중심에서 힘을 다해 그런 뉴스를 전했다. 어느 누구도 그 뉴스를 듣고 소망을 갖지 않았을 터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까닭이 그런 뉴스, 그런 정보, 그런 메시지 때문임을 어찌 알랴.

하 목사님을 내내 지켜보면서 그 눈길과 입술을 통해 복음의 열매가 맺히는 것에 놀랐다. 누군들 허물과 결점이 없을까? 그분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잘못에 몰려들어 떼로 물어뜯을 때에도 그 사람의 장점과 특성을 주목했고, 그 인생에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도록 인도하는데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 덕에 내게는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누구도 옳지 않다는 것, 특히 나는 항상 옳지 않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만이 소망이라는 것, 그래서 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빚을 졌다. 대갚음하지 못했다. 그러나 죄송하지 않다. 사랑의 빚은 대갚을 수 없기 때문이고, 그 사랑의 빚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조용히 고백한다.

하 목사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곧 뵙겠습니다.”

     

 

1951년 출생. 연세대를 거쳐 동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든콘웰신학교 대학원 목회학 석사. MBC 기자, 보도국 부국장, iMBC 대표이사 등 역임. 저서로는 <사람이 선물이다><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왜 분노하는가?>등 다수.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