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알에 담긴 미래

글 박교선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 편리함과 앞으로 이어가야 할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사과 한 알이 던지는 질문이다.

한파와 폭염, 심상치 않은 기상과 기후

사과 농부들은 2108년을 이상기상의 해로 기억할 것이다. 사과꽃이 한창 필 무렵인 4월 초순 갑자기 찾아온 영하 8도 한파로 꽃과 꽃봉오리가 얼어버렸다. 장수의 한 사과농가는 새벽 두시부터 약제 살포용 스피드스프레이를 사과원에 강하게 공회전시켜 정체된 냉기를 흩어보려했지만 소용없었다. 서리 방지 냉상팬도 마찬가지였다. 거창과 봉화같이 냉기가 정체된 곳에서는 꽃봉오리가 90퍼센트 넘게 얼어 죽었다. 벌과 나비도 추워 날지 못하니 꽃가루받이도 잘 될 리가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고 꽃가루받이에 성공한 꽃은 과실을 달았지만, 한파에 상처를 받은 탓에 쇄약해진 나무는 커가는 과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최고 온도를 갈아치운 한여름 사우나 더위와 가뭄으로 과실이 햇볕에 데고 물러지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우물을 파고, 강물을 끌어와 사과나무에 물을 뿌렸지만 자연의 힘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5월말 경북지역 우박과 10월초 경남북지역을 쓸고 간 태풍은 주요 사과 생산단지에 큰 피해를 줬다. 농학자들도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고, 앞으로 더 심한 기상이변이 다가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올해 사과는 지난해에 비해 15퍼센트 정도 수확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더위에 익은 과실은 저장력이 떨어져 내년 봄철에는 저장사과가 더욱 귀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이상고온이 그 이전에 비해 7배 정도 늘었다. 앞으로 온난화 현상은 급증해 21세기 중반쯤에는 현재에 비해 폭염은 두 배, 열대야는 여섯 배 늘어난다고 한다.

최근 온난화 영향으로 몇십 년 만의 폭설, 한파, 폭우 같은 예년에 흔하지 않던 이상기상을 자주 접하고 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상기상과 기후변화 온난화에 대한 대책 마련은 이미 중요한 국제 의제가 됐다. 근본 대책은 문제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과다 배출로 발생한 온난화 현상을 해결하려면 석유, 석탄 같은 화석원료 위주의 현 산업구조를 급격하게 바꿔야 한다. 인류는 선택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난화를 보여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올해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48차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총회에서는 지난 파리협정(COP21)에서 약속한 2도씨가 아니라 1.5도씨 이내로 제한하자는 보고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온도 상승이 1.5도씨에 머무를 경우 곤충 6퍼센트, 식물 8퍼센트, 척추동물 4퍼센트가 피해를 입지만, 2도씨로 올라가게 되면 곤충 18퍼센트, 식물 16퍼센트, 척추동물 8퍼센트가 서식지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에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선정된 것도 의미가 크다. 그의 기후변화와 거시경제의 상호관계 연구 성과를 인정한 것이다. 그는 지구 온난화를 인간계와 자연계에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세계 차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이고, 지난 2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 2030년까지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의 37퍼센트를 줄여야 한다. 특히 농업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농업분야 배출 온실가스를 정확히 평가해서 분야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온난화가 사과농업에 미치는 영향

대구는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중요한 사과 산지였다. 지금 대구에는 사과가 없다. 대구인근 시골에도 없다. 도시화 영향이 컸지만, 온도가 너무 높아 맛있는 사과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북 남부지역인 대구, 칠곡, 경산, 군위, 청도, 경주, 영천의 사과재배면적은 1990년 7,958헥타르에서 2015년 1,787 헥타르로 반의 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경북 북부지역인 안동, 영주, 청송, 문경, 봉화의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 5,863헥타르에서 10,292헥타르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겨울철 너무 추워 사과 재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강원도지역인 영월, 정선, 양구는 같은 기간에 51헥타르에서 343헥타르로 6배 넘게 늘었다. 단 25년 만에 사과재배 주산지가 경북남부에서 경북 북부 산간지대로 옮겨졌다. 이제 강원도 지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농업 지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농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생산 활동으로 어떤 산업보다도 기상, 기후 같은 생산 환경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기후변화는 작물 생산과 병해충 발생에 영향을 주고, 재배체계나 재배작물에 변화를 불러온다. 국가 식량의 수급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온난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작업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왔다. 농촌진흥청은 지형이 복잡한 우리나라 농경지별 상세 미래 전자기후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21세기말에는 강원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지금의 제주도와 같은 아열대기후지대가 된다. 식생이 변화하면 더불어 농업 기반 자체도 더불어 변화를 겪을 것이다. 사과재배 적지도 과거 30년에 비해 21세기 중반이면 이미 10분의 1로 줄어들어 강원도 일부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게 된다.

식물은 내재해 있는 생체시계로 생명활동을 조절한다. 이 생체시계는 기온, 일장 같은 환경 변화를 감지해 새싹과 꽃봉오리를 틔우고, 열매를 익히고, 낙엽을 지게 한다. 기후가 변화하면 꽃피는 시기, 열매 맺고 익는 시기, 낙엽 시기가 변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봄철 과종별 꽃피는 순서에 혼란이 생겼다. 매화, 복숭아, 배, 사과 순으로 차례로 피던 꽃이 거의 동시에 피기도 한다. 품종들의 꽃피는 순서가 오락가락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당연히 수확시기도 변하게 된다. 또한 온도가 올라가면 사과 등 대부분의 온대과수는 과실의 호흡량이 많아져 착색이 불량해지고, 당도와 산미가 떨어지고, 육질이 푸석해져 품질이 나빠진다. 저장성도 아주 나빠진다.

기후 예측지도에 따르면 앞으로 사과와 배 재배적지는 축소되고, 단감이나 감귤 재배적지가 지금보다 넓어질 것이다. 노지 채소는 재배시기가 바뀌든지 재배지가 변동될 것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여름배추는 꽃대가 올라오고 속이 물러져 상품성을 잃게 된다. 여름배추는 재배가 거의 불가능해지지만, 월동배추 재배적지는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저온피해 문제로 재배하지 못하던 열대나 아열대 작물의 재배도 늘게 될 것이다. 현재도 제주에서는 파파야가 무가온으로 재배되고 있고, 노지에서 올리브 열매가 몇 년째 잘 달리고 있다. 대표 아열대작물인 감귤은 육지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새로운 열대나 아열대작물이 재배될 것이다. 온난화 현상은 지금도 작물의 재배지, 수량·품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는 그 정도가 더욱 커질 것이다.

기후변화는 병해충 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꽃매미충, 미국선녀벌레, 총채벌레 가 이미 국내에 유입돼 여러 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다. 과실 농사의 재앙이며 식물검역 대표 금지해충인 오리엔탈과실파리와 감귤나무이의 국내 발생 위험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 벌레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병해충 검역에 막혀 수입되지 않는 사과, 배 같은 과일을 상대로 외국의 수입 압력이 더욱 거세지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작물별 병해충 방제 대책도 보완돼야 한다.

온난화가 사과재배와 농업에 가져올 변화

기후 온난화로 기존 작물의 재배적지가 바뀌고 있다. 이 양상은 점점 더 극심해질 것이다. 농업은 인류의 경험과 과학기술이 집적된 생명산업이다. 온난화 과정에서도 이에 적응해 농산물을 생산할 수밖에 없고, 대안을 찾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우선 미래 기후를 정확히 예측하고, 기후 변화에 작물이 받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기존 작물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어야 하는지 방법을 찾고, 기후변화에 맞게 새로운 작물을 도입해야 한다. 사과를 비롯한 기존 온대작물을 유지할 수 있게 새로운 재배체계를 만들 필요도 있다. 사과의 경우는 꽃이 늦게 피어 서리나 한파 피해를 피할 수 있는 품종, 자가결실성 품종, 고온에서 착색이 잘되거나 착색이 필요 없는 녹색 품종, 고온에도 육질이 잘 물러지지 않고 즙이 많이 생기며 저장이 오래되는 품종, 동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고온에서도 과실을 제대로 익히는 재배기술도 개발하여야 한다.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질소질을 비롯해 적정 비료의 사용량을 재산출하고, 일소를 예방할 수 있도록 수형도 개선해야 한다. 우박, 태풍, 강한 햇빛을 막을 수 있는 시설 설치도 고려해야 한다.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에서 사용하는 반영구적인 차광네트 시설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정식 수관 관수 체계를 갖추면 여름철 고온기 온도를 낮추거나 병 방제약제나 영양제 자동 살포에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온난화에 따라 새로 유입되거나 발생 생태가 바뀌는 병해충 방제기술도 필요하다. 오리엔탈과실파리와 감귤나무이 같은 금지 병해충이 유입되지 않도록 국경검역을 강화하고, 유입될 경우를 대비하여 병해충 생태와 발생 모형을 미리 연구해야 한다. 한 번 발생하면 완전방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농촌진흥청 연구자들은 오리엔탈과실파리가 발생하고 있는 대만에서 국제공동연구로 생태와 방제연구를 하고 있다.

앞으로 이상기상 현상은 더 빈번할 것이다. 이상기상이 입히는 피해는 시기, 장소, 작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갑자기 발생하는 이상기상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상예보 정밀도를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농업현장에서 실제 필요한 정보는 농장단위에서 발생하는 이상기상에 대한 미세정보이다. 기상정보를 농장의 지형, 재배작물의 종류, 생산체계 같은 농장별 특정 정보에 맞게 가공하여 농장에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농장별 서리 내리는 날, 홍로 품종의 꽃 피는 날, 수확해야 하는 날 같은 시점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팜’ 논의도 활발하다. 사과의 생육정보와 환경, 기상정보 자료를 바탕으로 최적의 생육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력이나 에너지, 양분을 덜 투입하고도 사과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 현대화의 사례이다. 인공지능과 온라인으로 연결된 서리나 동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류시설, 냉해 차단장치, 폭설이나 돌풍을 예방할 수 있는 내재해성 시설도 개발하고, 기존 농업시설의 기준도 온난화 상황을 고려해 적절하게 높여 잡아야 한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농업지도가 바뀌고 우리 삶의 형태가 변화하는 위험에 직면한 지금, 하나씩 차분히 대책을 세우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변화하는 기후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재배적지 선정, 저항성 품종 개발, 재배기술 개선, 돌발 병해충 방제, 이상기상 예측과 대응 체계 구축 같은 대책이 시급하다.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의 편리함과 앞으로의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에덴동산에도 있었고, 우주 섭리를 읽는 과학자 눈 속에 있었고,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사과 한 알이 던지는 질문이다.

박교선 님은 현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장으로 있다. 원예학을 공부한 뒤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과를 거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장과 포도연구센터장을 맡았다. 《과수학 총론》,《과수학 각론》,《한국원예발달사》,《과학기술50년사》를 펴냈다.

이 글은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264호 특집 ‘사과원에서’ 기사입니다.
정기구독 하시면 더 다양한 내용을 달마다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작은 것이 아름답다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