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 지지 않는 ‘원더우먼 엄마’


 

 

올해도 우리 집은 김장을 100포기나 했다. 네 식구가 사는 가정집 치고는 무척 큰 스케일이다. “엄마, 이번엔 50포기만 담가요”라고 권하는 나와 “그걸 누구 코에 붙이니?” 하는 어머니의 실랑이가 우리 집에서는 매년 반복된다.

 

함께 사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니 1년 365일 일손을 멈추지 않으신다. 앞마당에서 오이, 상추, 토마토, 감자, 양파, 고추 등을 기르는 야무진 농부로, 벽돌과 시멘트로 손수 담장을 쌓는 부지런한 일꾼으로, 세끼 모두 다른 반찬을 올리는 정성스런 요리사로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어머니의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시면 좋겠는데 여전히 일을 찾아서 하신다. 허리며 다리를 툭툭 두드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에 “몸도 아픈데 그만 일하고 좀 쉬세요”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어머니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긴 가족을 위해 평생 억척스레 살아온 어머니의 귀에 내 잔소리가 들어올리 없을 것이다. 평소 무뚝뚝하고 집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더 좋아하시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원더우먼이 되어야 했다.

 

술값으로 뭉텅뭉텅 빠져나가느라 아버지의 적은 월급이 더 초라해졌으므로 어머니는 늘 부업을 하셨다. 엽서 같은 것을 봉투에 담아 넣는 소소한 일들로 시작된 부업은 점점 규모가 커졌다. 회사를 그만둔 아버지가 월급을 못 갖고 오게 되면서 부업의 종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고단함을 헤아리기에 너무 어렸던 초등학생의 나는 그저 날로 좁아지는 집이 불만이었다. 봉제 부업할 때 사용하는 미싱 때문에 더 비좁아지고 너저분해진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기가 부끄러웠다.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맞아주는 깨끗하고 넓은 친구들의 집에 비해 우리 집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게 딱 한 가지 있었다. 어머니의 밥상이었다. 식사에 관한 아버지의 요구는 입맛만큼 까다로웠다. 아침, 점심, 저녁의 반찬이 모두 달라야 했고 된장찌개를 먹었으면 다음 식사 메뉴는 김치찌개여야 했으며, 고기반찬이 있으면 한 상에 생선구이도 꼭 올라와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입맛을 모두 맞췄던 어머니의 밥상은 어느 한정식 집 못지않게 풍성하고 정갈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어떻게 매일 그 수고를 감당하시는 건지 놀라웠다.

 

“그땐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줄 알았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끔 옛 시절을 회상하는 어머니에게서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어머니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아픈 나였을 것이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네 살 난 아들의 모습이 힘없어 보여 데려간 병원에서 ‘갑상선 기능저하증’이라는 진단을 들었던 어머니.

 

슬픈 기색 없이 내 손을 잡고 3개월마다 병원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비장한 표정이 마치 나쁜 병을 물리치러 출동하는 슈퍼맨 같았다. 덩달아 나까지 ‘내 병은 슬퍼할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36년 동안 갑상선 치료약을 먹으면서도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마음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만히 앉아 울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감정보다 행동을 앞세우셨던 것이겠지만 어머니 덕에 난 활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함께 살게 된 우리는 어머니가 끌어모은 일거리들을 사이에 두고 매일 옥신각신한다. 매번 내 말을 안 들으시지만 어머니가 밉지 않다. 부모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그 부모는 노쇠해진 것이라고 한다. 듬직했던 어머니가 여덟 살 난 딸아이 못지않게 귀여워 보이니 이제 내 어머니도 연로해진 것일까.

 

집안에 경사가 생기면 어머니는 가끔 “네 아빠가 계셨으면 엄청 좋아하셨겠다” 하신다. 고생만 시켰던 남편인데도 좋은 기억이 더 많은가 보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나는 그녀의 일생이 희생의 삶이 아닌, 가족을 향한 사랑을 가슴속에 채우는 값진 시간이었기를 감히 바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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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준

‘팝핀현준’이란 예명으로 활동 중인 안무가 겸 공연예술가입니다. 국악인 아내 박애리와 국악과 댄스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여 ‘전통과 현대의 예술적 만남’ 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호서예술전문학교 실용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브런치에 2년 넘게 생활 수필을 써오고 있는 자유로운 에세이스트입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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