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 한 편을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는 시를 통해 참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는 기쁨도 크지만 시를 읽는 기쁨이야말로 언제나 저의 평상심과 환희를 채워주는 부담 없는 선물로 다가오곤 합니다. 지난 수십 년 간 발표한 제 시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도 책 속의 어느 시 한 편을 보고 희망과 위로를 얻었다면서 편지를 보내 온 수많은 독자들의 정성과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연은 하도 간절하고 감동이 밀려와 제가 힘들 적마다 다시 살아갈 힘을 주곤 했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시를 통해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지요. 가끔은 제 시들을 골라서 캘리그라피로 아름답게 꾸민 필사 노트를 보내주는 분들도 있는데 다시 읽어보면 처음 본 듯 새로운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새해에도 보물찾기 하듯 좋은 시를 읽으리라 고운 다짐을 하면서 올해는 멀리 있지만 가까운 독자들에게 매달 함께 읽고 싶은 시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에 대하여>라는 시를 함께 읽고 싶네요.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복효근의 〈버팀목에 대하여〉

 

오늘은 기일을 맞은 어느 수녀님을 위해 기도하러 묘원에 갔다 그곳에 묻힌 수도 가족들을 기억하며 이 시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겨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우리 형제들과 공동체와의 결합은 끝나지 않는다’는 수녀회 회헌(회칙)의 말이 시인의 표현 속에 그대로 사무쳐왔습니다.

 

지상에서의 소임을 다 마치고 지금은 평온히 누워계신 우리 수녀님들이 여기 남아 있는 우리를 받쳐주고 있는 버팀목이구나 하는 생각 또한 새로웠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하는 구절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지난 일 년의 삼 분의 일을 병원에 있으면서 아픔과 동행하다 보니 제 나름대로 깨우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는 몸이든 마음이든 다 어딘가 조금씩 아픈 존재라는 것,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병실에서도 환자는 보호자를, 보호자는 환자를 서로서로 위로하는 가운데 사랑이 깊어지고 평화가 온다는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아무리 거칠고 각박해졌다 해도 단순하고 따스한 한마디의 말, 온유와 친절이 스며든 한마디 위로의 말 앞에서는 다들 마음이 순해지고 착해지기 마련입니다. ‘괜찮으세요?’ ‘좀 어떠세요?’ ‘힘을 내세요.’ ‘빨리 나아야할 텐데!’ ‘기도할게요.’ 이렇게 평범한 말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얼마나 고맙고 새롭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너무 많이 아플 때도 찡그리지 않고 웃는 얼굴로 평상심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지인들이 건넨 덕담과 위로의 말들 덕분이었습니다. ‘세상엔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기도하니 아픔 중에도 잠시 마음이 맑아지고 표정이 밝아지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 시간의 선물을 안고 새해가 밝아오겠지요. 새해엔 우리 모두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좀 더 겸손해지기로 해요. 보다 큰 사랑을 위해 조금만 더 낮아지는 연습을 하기로 해요. 겸손하고 낮아지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잘 죽는 연습을 해야겠지요?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기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절더러 ‘보아하니 나이도 꽤 있는 것 같은데 계급이 무어냐?’고 물어서 아무 계급도 아니라고, 그러나 50년 이상을 살았으니 이젠 원로에 속하긴 한다고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진정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원로인가?’ 자문하며 부끄럼이 앞서는 순간이었지만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이 스스로 대견해 빙긋 웃었습니다.

 

아주 작은 몫이나마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한 겸손과 인내의 실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며 두 손 모으는 지금, 잎사귀를 다 떨구고 앙상하게 서있는 성당 앞 느티나무 한 그루가 격려의 눈길을 보내오니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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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부산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에서 몸담으며 수도자의 삶과 작가의 길 속에서 기쁨을 찾는 수녀 시인입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기다리는 행복》 등을 냈습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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