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영월과의 만남 / 김진표, 국회의원


 

지금은 강원도 영월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동강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여행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만난 영월은 강원도인지 경상도인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 잘 몰랐던 곳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영월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 곳이었지만, 지금은 언제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19833, 나는 서기관으로 승진을 했고, 바로 영월세무서장으로 발령이 났다. 함께 발령이 났던 후배 사무관 9명을 대표해서 내가 신고를 하게 되었다.

재무부 서기관 김진표는 영주세무서장으로 발령을 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그렇다. 나는 당시에 영월이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어서 대학 친구의 고향인 영주라고 한 것이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승진소식을 전하고 함께 기뻐했지만, 이어진 영월세무서장 발령 소식에 아내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가족은 가능하면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함께 살아야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참사랑을 나누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던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처음 알게 된 영월로 함께 가게 되었다.

그곳은 멀기도 멀었다. 멋진 산과 들을 질릴 때까지 보고 나서야 도착한 기분이었다. 세무서장 관사라고 배정받은 집도 놀라웠는데,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재래식 화장실은 기본이었고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샤워실도 내가 직접 만들었고 우리 아이들은 거기서 목욕을 했다.

관사에는 우리 가족 외에도 외지에서 온 신입 공무원들과 세무서 직원 일부도 함께 살았다. 하루에 갈아야 하는 연탄은 기본 10장은 넘었다. 한번은 아내가 연탄을 갈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 가스를 마신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후 연탄 갈기는 내 몫이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내에게는 자상한 남편,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의 모습을 영월에 와서야처음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영월의 군수, 경찰서장 등 기관장들과 영월 군민들은 우리 가족을 신기한 듯 지켜봤다. 기관장이 가족과 함께 영월에서 사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영월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아내에게 있어서는 5장을 기다리는 것도, 동네아주머니들과 호박, 고구마, 복숭아 등 제철 과일과 야채 등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나 역시 동네 사람들과 동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주말을 보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어느새 영월 사람이 되었다.

영월 사람(?)이 되고 나니 영월세무서장으로서의 눈과 귀가 열렸다. 자주 다니던 다방, 식당 등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은 세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당시 영월의 영세 상인과 자영업자들은 경기·인천 지역의 매출이 더 큰 곳보다 많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국세청장에게 도시지역과 영월 같은 지역의 세금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라는 특별보고를 했다. 그 덕분에 강원도 여기저기에 세금을 조정 받는 곳들이 생겨났다. 작은 도시였던 영월에 소문은 금세 퍼졌고, 나에겐 세금 깎아주는 세무서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영월 사람들은 이런 세무서장은 처음 봤다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 외에도 나는 시간이 될 때마다 영월의 세무공무원들에게 세법에 대한 교육을 해주었다. 그들이 관련 자격증을 따거나 상향 전보가 될 때에는 나도 기뻤다. 모두 행복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2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다시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세무서장이라는 특성상 발령 소식은 주말에 전해졌고, 다음 날인 월요일 새벽에 바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하던 날 새벽, 우리 집 주변에는 수백 명의 영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별의 아쉬움에 나도 울고 아내도 울고 우리 아이들도 울었다. 모인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울고 갔던 영월에서 우리 가족은 울면서 돌아오게 되었다.

 

1947년 수원 출생.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위스콘신대학교 공공정책학 석사. 6대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 6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 민주당 원내대표,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등 역임. 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사진 김신영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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