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내 인생의 만남들 / 원일희, SBS 논설위원·앵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한국일보, SBS 기자, 워싱턴특파원, SBS 사회부장을 거쳐 SBS CNBC 용감한 토크쇼 직설앵커, SBS 논설위원. 

참 오래도 했다. 한국일보 기자 5, SBS 기자 25. 30년이란 세월의 길이가 아니라 비교적 후회 없이 해왔다는 점에서 감히 대견하다고 자평해본다. 신기하게도 30년 전 기자 시험 면접 질문이 생각난다. “자네는 왜 기자가 되려 하는가?” 한눈에 봐도 지금 나 정도 되는 논설위원급 면접관의 질문. “사람 만나는 걸 유난히 좋아합니다. 누구든 만나서 묻고 답을 듣는 걸 제일 잘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런 요지로 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합격한 걸 보니 영 틀린 답을 한 것 같진 않다고 믿어왔다.

지난 30년 인생은 만남그 자체였다. 경찰서에서 시작한 사회부 초년 기자 시절. 당시 기자는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형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취재하는 훈련을 6개월 넘게 했다(요즘은 국가인권위 고발 감이다. 52시간 노동시간 때문에라도 상상조차 못한다). 아무튼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부 기자. 누구든 붙잡고 묻고 또 묻는 게 일이었다. 당직 형사는 물론, 각종 범죄자와 피해자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딱 한 명 떠오른다. 대한민국 최초 트랜스젠더 소송 원고였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법적으로 여성임을 인정받고자 소송을 낸 남성(?)이었다. 한참 뒤 하리수라는 연예인이 유명해지면서 성전환 수술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지만, 당시 첫 만남은 이상함 그 자체였다. 그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법원 판결문을 확보하고 변호사를 수소문해 집 주소를 받고 찾아가는 아날로그 방식의 추적으로 드디어 만났다. 그는 분명 여성(?)이었다. 외모는 물론, 말투와 앉는 자세까지 영락없이. 군대까지 갔다 와서 성전환 수술을, 그것도 부산까지 가서 받은 이유가 뭐냐.” “신체적으로 여성이 됐으면 됐지, 주민번호 변경 소송까지 낼 필요가 있었나.” 지금 기준에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기초 지식과 인식이 없는 무식한 문답이 오갔다. 솔직히 당시 난 20대 남자 기자. 비슷한 나이의 남성이 이렇게까지 여성이 되려고 하는 걸 이해하기엔, 세상의 다양성을 수용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 만남 후 성소수자 인권과 주장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사회부 기자를 10년쯤 거친 뒤 인생의만남은 주로 정치인들로 채워졌다. 유명 정치인을 24시간 밀착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역시 지금과는 다른 생활이었다. 이른바 ‘3김 시대.’ 두 종류의 정치부 기자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담당한 정치인 집에서 밥을 함께 먹는 기자와 집 앞을 서성대는 기자. 내가 담당한 정치인 승용차 운전석 뒷좌석(상석엔 주인이, 조수석엔 수행비서가 앉으니 빈자리는 운전석 뒷자리)에 올라타는 기자와 택시로 쫓아가는 기자. 그들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경쟁 기자를 제치고 옆 뒷자리에 올라타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난 택시 타고 쫒아가는 축이었던 것 같다).

그 만남의 정점은 역시 3김이었다. 김영삼은 이미 대통령을 마치고 상도동으로 돌아왔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YS는 산행을 즐겼고 DJ와 각을 세웠다. 하루는 양평으로 등산을 간 YS를 찾아 인터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경찰 무전을 귀동냥해가며 반나절 만에 YS 일행을 양평 어느 산기슭에서 찾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 분명 경호원과 수행원이 있을 것이고, 인터뷰가 쉽지 않을 거라 긴장했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다가가는데, 역시 YS였다. 카메라를 발견한 YS는 악수를 하더니 그림부터 만들어야제? 우째? 저쪽으로 갔다 다시 걸어오면 되나?” YS는 내려온 산기슭 모퉁이로 돌아가 일행과 내려오며 기자를 우연히 만난 듯한 화면을 연출(?) 해주고 발언했다.

DJ는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출입 기자로 만났다. 그래서인지 사적으로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전세기로 순방 다닐 때 기내 간담회가 가장 근접한 만남이었다. 한 가지 또렷한 기억. 어쩌면 손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악수하는 손바닥의 촉감이 너무 보들보들했다. 동교동 한 측근에게 그 얘기를 하니 정확히 봤단다. “DJ 선생님은 몸이 불편해서 평생 따로 운동하는 게 없고 그저 산책하는 정도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평생 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손이 거칠어질 일이 없다. 선천적으로 피부가 곱기도 하다.” 하긴 야당 시절이나 대통령 시절에나 문고리 한번 직접 잡을 일이 있었을까. 손이 부드러운 건 어쩌면 당연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은 거칠었다. 손바닥의 거친 느낌이 생생하고, 악력도 셌다. 그와의 첫 만남은 낙동강 하구. 부산시장 떨어져, 국회의원 떨어져, ‘바보 노무현소리를 들을 때다. 낙선자 인터뷰한다고 서울에서 내려간 나와 그는 낙동강 변을 걸으며 인터뷰했다. 이후 대통령이 되고 비극적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워낙 어록을 많이 남겼지만, 나에겐 첫 만남의 거친 손바닥의 촉감이 더 오래 기억되고 있다.

나의 만남은 아직도 계속되지만 형태는 많이 달라졌다. 현장보다는 스튜디오와 온라인의 만남으로. ‘직설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오뉴스프로그램 출연자로서, 라디오 방송 패널로서, 많은 전문가와 정치인과 이슈를 만난다. 그리고 시청자를 향해 의견을 피력한다. 다양한 평가와 의견이 실시간으로 오간다. 현장 기자 시절보다 만남의 폭은 훨씬 넓어진 느낌이다. 나이 때문인가, 내 의견과 주장에 대한 조심성은 더욱 커졌다. 옳다, 잘한다 소리보다 틀렸다, 맘에 안 든다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앞으로 나의 만남은 얼마나 더 지속될까. 세상은 복잡해졌고 이념의 스펙트럼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넓어졌다. 좌우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만남을 넓히고 싶은데, 가능은 할까? 방송을 통해 오늘도 스스로 묻고 대답해본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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