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효과 외길, 그 길이어 행복하였네라!

특수효과 외길, 그 길이어 행복하였네라!

 

 

 

영화나 드라마에 사용되는 특수효과는 극 전체의 사실감과 몰입감을 높여주는 일등공신이다. 달리는 차를 뒤집거나 고층건물을 무너뜨리고, 눈앞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장면뿐 아니라 화면 구성에 필요한 모든 시각적 비주얼을 책임지는 게 특수효과의 영역이다. 선풍기를 돌려 바람을 일으키고 군용 폭탄을 사용해 흙먼지를 날리는 게 전부였던 국내 특수효과 기술은 이제 전체 화면의 70퍼센트 이상에 관여할 만큼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영화 속에서 ‘와, 저 장면 참 멋있네!’라고 생각될 때가 있는데 대부분 그게 특수효과가 들어간 장면이에요. 컴퓨터그래픽(CG), 심지어 아무런 장치 없이 찍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면 중에도 사실은 특수효과 팀의 손이 닿은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속 특수효과의 역할을 설명하는 정도안(61) 대표의 차분하고 강단 있는 눈매에서 사십 년 베테랑의 여유와 품격이 느껴졌다. 나이에 비해 일찍 세어버린 흰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그는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특수효과 전문회사 ‘데몰리션(DEMOLITION)’의 대표이자 현역 특수효과 감독 가운데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이 분야의 장인(匠人)이다. 영화제작자나 감독들이 가장 첫 손에 꼽는 특수효과 전문가답게 그의 필모그래피엔 <나에게 오라(1996)> <비트(1997)> <무사(2001)> <살인의 추억(2003)> <실미도(2003)> <부산행(2016)> 등 한국 특수효과의 중요한 분기점이 됐던 영화들이 오롯이 녹아 있다.

 

CG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감독들은 보다 현실감 있는 리얼 액션을 선호하는 편이다. 정 대표가 이끄는 데몰리션 특수효과 팀이 많은 영화 현장의 부름을 받는 이유다. 현재 국내 특수효과 회사는 모두 60여 개. 하지만 실제로 상업영화에 참여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사는

데몰리션을 포함해 네다섯 개 업체밖에 되지 않는다.

 

“특수효과 시장에서 오래 활동하는 업체를 찾기 힘든 이유는 기술경쟁에서 앞서야만 살아남는 치열한 환경 때문이에요. 갑자기 시나리오에 없던 새로운 장면을 촬영하기 원할 때조차 감독은 무조건 특수효과 팀에 답을 요구하게 됩니다. 장비나 예산이 부족한 상태라도 감독이 상상한 그림을 어떻게든 시각적으로 구현해주는 게 특수효과 스태프의 역할이라 현장에서의 임기응변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정 대표의 가장 큰 경쟁력은 1976년부터 영화 일에 몸 담아온 덕분에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를 경험해보았다는 것이다. 문방구 장난감 총을 개조해 무시 무시한 살인병기를 만들어내고, 솔잎을 태워 자연스런 스모크를 연출해내는건 가장 초보적인 일이다.

 

감독의 요구대로 회오리 모양으로 치솟는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내거나, 승용차가 몇 바퀴씩 공중제비를 도는 고난도의 장면 연출도 정 대표의 손을 거치면 몇 십 배의 예산을 운용하는 할리우드 특수효과 팀 못잖게 멋진 ‘그림’이 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중견 감독들 중엔 아예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데몰리션 팀과 함께 일하겠다는 단서를 붙이는 경우도 많다.

 

“가령 감독이 100을 원하면 저는 항상 120을 준비해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남보다 많이 공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이듬해부터 영화 촬영장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종로3가 피카디리 옆 구둣방에서 ‘찍새’ 생활할 때도, 을지로 골목에서 조각상 만드는 일을 할 때도 ‘남보다 더노력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영화 촬영장에서 일하던 분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사십 년 넘게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어요.”

 

 

 

월급 2만 5천 원을 받으며 시작한 허드렛일이었지만, 기계 다루는 걸 좋아했던 그는 지금껏 순발력과 상황 대처능력이 필수적인 이 일이 자신의 천직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특수효과 현장을 고집하길 10년.

 

신혼 초 아내가 전셋집을 담보로 마련해준 300만 원을 밑천으로 사무실 한 칸짜리 특수효과 전문회사로 출발했던 그는 어느덧 16명의 팀원을 거느리는 중견 업체의 수장이자 이 분야 최고의 테크니션(technician)이란 찬사를 들으며 오늘날까지 굳건히 촬영 현장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무조건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하는 감독들이 있어 난감할 때가 많지요.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주고 나면 긍지와 보람을 느낍니다. 40년 베테랑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안 된다, 못 한다’는 말은 하기 싫습니다. 그렇게 고생해가며 만든 작품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죠. 작년 한 해만 해도 <인랑> <공작> <버닝> <마녀> 등을 비롯해 15편의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어요.”

 

국내 영화 역사 처음으로 박진감 넘치는 도심 총격전을 선보인 <쉬리(1999)>, 수백 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던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이 지금껏 정 대표의 손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그렇게 40년 넘게 참여한 작품이 어느 덧 250여 편을 넘었다. 특히 화약을 이용한 대규모 폭발 씬은 정 대표가 가장 자신하는 전공분야다.

 

그런 그에게 요즘 들어 가장 열렬히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중국영화 시장이다. 할리우드와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예산으로 그 이상의 특수효과를 재현해내는 데몰리션 팀은 벌써 스펙터클한 화공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던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2008)>, 중국영화 역사의 분기점이 됐던 펑샤오강 감독의 전쟁영화 <집결호(2007)> 등에 참여해 한국 특수효과의 기술 노하우를 입증했다. 올해 개봉 예정인 <봉오동 전투> 작업을 막 끝낸 지금도 중국 영화계의 러브콜은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 보니 헛고생이란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막 회사를 만들었을 땐 일이 많지 않아 남들이 기피하는 어린이 영화를 주로 찍었는데 그때 쌓은 노하우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으니까요. 요즘 관객들은 이름도 생소할 <바이오맨> <우뢰매>처럼 8,90년대 어린이 영화의 90퍼센트 이상을 저희 팀이 담당했습니다. 어린이 영화는 감독이 ‘알아서 연기만 내달라’ 하는 식으로 디렉팅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특수효과를 실험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

 

특수효과는 따로 보고 익힐 수 있는 매뉴얼이 없는 분야인데다 업체마다 기술 유출을 꺼려 보안 유지에도 엄격한 편이다. 현장마다 감독의 요구나 촬영 여건이 달라 장비 또한 매번 상황에 맞춰 개량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자체 제작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장비가 수백 개에 이른다.

 

멀쩡하게 평지를 달리던 승용차가 앞구르기를 하고, 할리우드 스태프들까지 깜짝 놀라게 한 엄청난 규모의 폭발 씬이 모두 정 대표의 아이디어를 통해 화면에 구현되었다.

 

데몰리션 창고 건물엔 용도조차 짐작하기 힘든 수백 대의 특수효과 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회사 부지 한편에 건립 중인 국내 최초의 특수효과 전문 스튜디오도 곧 완공될 예정이다. 외국 영화 스태프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꼭 한번은 견학해보길 원한다는 데몰리션은 그의 사십 년 영화 인생이 시작되고 끝날 탯자리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지금도 저는 촬영 현장나가 있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해요. 오늘은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5분대기조처럼 늘 초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가도 감독님 입에서 시원하게 ‘컷!’ 소리가 떨어지면 그 순간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버려요. 그래서 저에겐 이 일이 천직인가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정도안의 고즈넉한 눈매가 오늘따라 더 믿음직해 보인다.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샘터

샘터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