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삼킨 인생의 지혜

울음을 삼킨 인생의 지혜

양춘재 할머니의 시래기콩탕과 도토리묵무침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삼정노인정에는 매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30여 명의 어르신들 식사며 노인정 살림을 살뜰히 챙기는 양춘재(74) 할머니 덕분이다. 총무를 맡고 있는 그녀의 똑 부러지는 일처리에 노인정은 마을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여름 진행한 ‘할머니 레시피’에서도 양춘재 할머니는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선 요리사였다. 할머니 레시피는 이른바 노인과 청년이 함께하는 요리 교실로 할머니는 인근 대학교의 자취생들에게 집밥 비법을 전수해주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오늘은 정든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점심 한 끼 하기로 한 날, 어젯밤에 미리 불려놓은 콩은 갈아 한 솥 가득 끓인다. 점심 메뉴는 예로부터 강원도 지역에서 즐겨 먹던 시래기콩탕. 밭에서 나는 고기라 불리는 콩을 생으로 갈아 만들다 보니 콩 고유의 단백함도 살아나고 섬유질 파괴도 적어 맛과 영양 모두 으뜸인 요리다. “어릴 때부터 먹던 음식이야. 지금은 두 식구뿐이어서 자주 못 해먹는데 아들, 딸들 모두 모이면 한 솥 끓여서 잘 먹었지. 뽀얀 국물에 밥 말아 먹으면 꼬숩고 든든혀.”

 

우유처럼 뽀얀 국물을 내기 위해서는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게 많다. 눌어붙어 타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하고 소금 간은 마지막에 해야 한다. 소금을 일찍 넣으면 국물이 삭아 검게 되기 때문이다.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오늘 따라 국물이 뽀얗게 잘 우러나 기분이 좋은 할머니는 천일염을 사서 직접 볶은 특제 소금을 한 옴큼 넣어 콩탕을 마무리한다.

 

손님상에 어디 콩탕 한 그릇만 올릴 수 있으랴. 도토리묵무침도 곁들인다. 며칠 전 산에서 주워온 도토리로 묵도 넉넉하게 쑤었다. 미끄러운 묵은 젓가락으로 집기 편하도록 세심하게 홈을 내어 썬 다음 골고루 양념에 버무려준다.

 

묵 써는 것 하나도 남다른 할머니의 부엌 곳곳에는 생활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10년이 넘은 나무 도마는 들기름을 발라 햇볕에 말려 사용한 덕에 여태까지 안 썩고 멀쩡하고, 더덕, 도라지 등의 끈적끈적한 진액은 식용유로 씻으면 잘 지워져 개수대 앞에는 늘 식용유가 놓여 있다.

 

“누가 알려준 게 아녀.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물어볼 수도 없었어. 그것도 안 배워가꼬 시집왔냐고 하니께. 혼자 생각해서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한 거지.”

 

꽃다운 열여덟에 시집온 그녀는 결혼보다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서울에 올라가 공장에 다니며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우고 싶었지만 그 시절 부모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때 뜻을 굽히지 않았으면 지금쯤 사장이든 뭐든 한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갯말이 공연한 소리는 아니다. 그녀는 머리도 비상

한데다 부지런하고 수완도 좋았다.

 

남편과 함께 인제 군부대 앞에서 만물상을 운영할 때는 하루 2시간 이상 맘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철물, 신발, 학용품 등 말 그대로 있어야 할 건 다 있던 만물상을 밤 12시에 닫고 밀린 빨래며 집안일을 마치면 새벽 2시였다. 그제야 잠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4시부터 군인들이 문을 두드렸다. 몸이 남아날 리 없었다. 점점 야위어갔고 장사를 계속할 수 없었다.

 

 

 

눈 감으면 아른거리는 얼굴

인제를 떠나 춘천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농장일도 나가고 보험회사에도 다녔다. 그러던 중 춘천댐 앞에 괜찮은 가게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슈퍼를 차려 감자전도 팔고 커피도 팔았는데 장사가 꽤 잘되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1994년 7월 3일. 할머니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두 아들과 막내 사위와 함께 서울 큰딸네 가던 길이었다. 소나기가 퍼붓던 그때, 교차로를 달려오던 승용차가 심상치 않았다. 큰아들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빗길에 미끄러진 차는 그만 전봇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의식을 잃은 아들이 보였고 그녀는 행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아들을 구급차에 실었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가 말했다.

 

“천장이 새나 봐요. 물이 떨어져요.” 얼굴에서 피가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유리가 깨지면서 밖으로 튕겨져 나간 그녀는 갈비뼈 12대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두 아들은 그날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성한 자식을 둘이나 한날한시에 보낸 어미의 마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참척(慘慽)의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몸무게가 32킬로그램까지 빠졌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는 행여 쓰러질까 전봇대를 끌어안고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흑염소를 고아 먹고서야 그나마 살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드러진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는 노래방에서 설움을 토했고, 밤에는 수를 놓았다.

 

“낮에는 노래방에도 손님이 없으니까 주인아줌마가 계속 시간을 넣어줘. 몇 시간씩 혼자 노래부르다 오는 거야. 밤에는 수를 놓고…. 수예점에서 남들은 1년 걸릴 걸 20일 만에 해온다고 그러더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괴로운 생각이 피어올랐다. 노래 부르기, 수놓기 외에도 산에 가 나물도 캐고 도토리도 줍고, 담금주도 만들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주부 사원으로 보험 일을 다시 시작했고 강원도에서 1등 실적을 올리기까지 했다. 거실에는 상패를 들고 있는 그날의 사진이 걸려 있다. 거실뿐 아니라 안방, 부엌 등 집안 곳곳에는 수많은 사진액자가 벽에 붙어 있다.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가족의 일대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아들도 함께다.

 

 

“남들은 마음 아프게 왜 걸어놓았냐고 하는데 내 새끼 내가 보고 싶을 때 바로바로 보려고 걸어놨어.” 내외가 밥을 먹는 식탁 옆에도, 거실 TV 맡에도 두 아들이 있다.

 

쾌활하고 씩씩한 양춘재 할머니를 보고 어느 누구도 그 상처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더라고…. 그럭저럭 산 게 25년이여. 허허.” 이 말을 담담하게 꺼내기까지 얼마나 속으로 되뇌었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게 자그마치 25년. 그 세월을 지나온 할머니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사뭇 시리다.

 

 

글 김윤미 기자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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