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는 보석 ‘오, 수정!’

 

 

2013년 뒤늦게 영화 연기를 병행하기 시작해 여배우 최초로 네 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필모그래피에 올린 행복한 배우. 지난해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억울한 사고로 아들을 잃은 농아 어머니를 연기해 1,200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던 배우 예수정(65)은 요즘 충무로가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영화 데뷔 15년 만에 그녀에게 첫 여우조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2018 더 서울어워즈’는 40년 연기 인생에 방점을 찍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소속사로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전보다 늘긴 했어요. 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는데 연극 무대에만 설 때보다 확실히 제 얼굴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서 새삼 영화라는 장르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네요. 자칫 영화 쪽에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비춰져 연극 무대에서 불러주지 않을까 봐 걱정도 되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더 열심히 활동할 생각입니다.”

 

영화는 연극에 비해 더 자연스럽고 일상화된 연기를 요구하는 장르다. 클로즈업이나 줌아웃 같은 카메라 워크에 익숙지 않은 연극배우들이 영화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연기적 밑줄 긋기’가 필요한 배우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너진 터널에 갇힌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노모의 애끓는 모정을(영화 <터널> 2016),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몰려드는 좀비 떼에게 몸을 내줘야 하는 그 처연한 순간을(영화 <부산행> 2016) 무심한 눈빛 하나로 그토록 절절히 표현하는 건 예수정이 이제 그만큼 영화 문법에 익숙해졌다는 반증이다.

 

“나문희, 김혜자, 김해숙에 이어 또 한 명의 ‘어머니’를 갖게 됐다”는 충무로의 호평은 등장만으로도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배우 예수정에 대한 기대감을 말해준다. 대기만성의 배우 예수정은 고려대 독문과 재학 시절인 1979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감조차 희미했던 자신이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를 예수정은 대학생이 되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눈뜨게 됐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 학내 연극에 배우로 출연하면서부터 어쩌면 이 일에 평생을 바쳐도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 나이가 돼서도 불합리한 일을 보면 화가 많이 나요. 요즘 사람들이 점점 더 품위 없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요.”

 

예수정은 지금도 자신의 연기가 ‘극장은 시민을 계몽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던 브레히트의 연극론으로부터 출발했음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고집 너머엔 국내 방송 역사상 최장수 드라마인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의 모친 역으로 유명했던 어머니 정애란(본명 예대임, 2005년 작고)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해방 전인 1943년부터 연기 생활을 시작해 배우들의 대모나 마찬가지였던 어머니는 후배 연기자들이 대중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그냥 넘어가지 않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남몰래 술 담배를 즐기는 여배우들에게 차라리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놀다 가라며 집을 개방할 만큼 품이 넓었던 어머니는 대중연예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한 분이었다.

 

“특히나 어머님 시절엔 배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을 때라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별로 탐탁지 않아 하셨어요. 남 앞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야하는 대중 연예인 대신 조금 더 평범한 일에서 행복을 찾기 바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제 열정을 아신 뒤로는 묵묵히 딸의 행보를 지켜봐주신 고마운 분이지요.”

 

 

 

졸업과 함께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잠깐 활동했던 그녀가 지금처럼 연기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인 건 건 1984년 떠난 독일 유학 시절이었다.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학에서 연극학 석사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육아와 남편의 뒷바라지 때문에 꽤 오랜 기간 연극 무대를 떠나 있었다. 박사 과정을 밟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결국 자신의 학위 논문까지 포기했지만 그녀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건 그 8년 간의 독일 생활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들 챙겨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해야 할 집안일이 잔뜩 쌓여 있는 거예요.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걸레질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 또한 연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도 닦아보고 저렇게도 닦아보고…. 그러면서 연기도 뭔가를 꾸준히 해나간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포기하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그 일을 계속한다는 것! 그게 제 연기의 유일한 밑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1991년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매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고, 2003년 공연장까지 찾아온 장준환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 출연하면서 영화 연기로도 활동 폭을 넓혀 놓았다. 지금껏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 32편. 초창기 그리 비중이 높지 않던 배역도 점차 조연, 주연급으로 격상되었고 감독들의 러브콜도 계속 이어진다.

 

“사실 같이 작품할 때 빼고는 동료 배우들과 사적으로 자주 어울릴 만큼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연기를 할 때는 저의 두뇌를 열어서 막 두드리는 느낌이기 때문에 동료들과 활발하게 대화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저를 다 열어 놓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일이 없을 때는 조용히 집에 있는 게 제 일상이에요. 그 시간 동안 또 다음 배역을 기다리면서 혼자 준비하고 연습하는 거죠. ”

 

스스로를 연기적 테크닉이 능한 배우는 아니라고 말하는 예수정의 가장 큰 자산은 무대에 대한 경외심과 주어진 배역마다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서의 성실함이다. 부조리한 일을 보면 분노하고 사회적 약자들에 공감하는 마음도 여전해 2012년 칠레 군부독재 치하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연극 <과부들>,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하나코>, 각기 그 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즉흥 1인극 <하얀 토끼 빨간 토끼> 같은 작품을 만났을 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이 기간 그녀는 연극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김동훈연극상’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히서연극상’ ‘이해랑연극상’ 등을 휩쓸었다.

 

TV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머니나 형부(배우 한진희)에 비해 조금 늦게 대중의 눈에 띈 예수정은 이제 관객들이 가장 믿고 좋아하는 배우로 차근차근 자신의 존재감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연극연출가로 주목받고 있는 딸 김예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뿌듯함도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딘 끝에 얻게 된 삶의 보람이다.

 

“생각해 보니 올해가 제가 연기 생활을 시작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더군요. 처음에는 ‘에이, 그까짓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한 가지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왔다는 점에서는 스스로를 좀 칭찬해줘도 좋겠단 마음이 생겼어요. 49주년을 맞은 <샘터>도 그런 마음일 것 같아요.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이어져 길이 생기는 것처럼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더 멋진 인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마냥 멀게 보이던 시절, 그녀는 ‘지금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면 너도 분명 마흔 살 때쯤 좋은 배우가 되어 있을 거야’라는 다짐으로 용기를 불어넣곤 했다.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력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걸어온 길에 남은 그녀의 발자국들….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언젠가 튀어나온다는 말이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배우 예수정. 어쩌다 우리는 저렇듯 휘황하게 반짝이는 보석을 지금에서야 발견하게 된 것일까.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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