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인생의 새로운 셔터를 누르며 / 비주얼 아티스트 박귀섭(BAKi)

어릴 적 자주 연을 날리며 놀았는데, 바람에 몸이 딸려가니 연이 더 커지면 나도 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연을 크게 만들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바로 땅바닥에 고꾸라졌죠(웃음).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은 일단 해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어요.”

비주얼 아티스트 박귀섭(35)이라는 단어의 형태소는 꽤 흥미롭고 다양하다. 사람꽃을 피워내는 생각의 나무처럼 뿌리에서 가지로, 자연에서 인간으로 뻗어나가는 생의 의지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읽힌다. 몸의 언어가 시각화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 중 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과 Lyfe Jennings앨범 (뉴욕 소니뮤직)의 커버 이미지로 사용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작품 는 우연히 나무를 보다가 영감 받았어요. 지인이 너 같은 사람 한 명을 만들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떠올리며 스케치했어요. 정말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고, 모진 비바람과 사계절을 겪어야 하죠. 나무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국립발레단 동료들에게 부탁했는데, 그 안에서 각자 다른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 되더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약하면서 뉴욕 인터내셔널 발레대회에서 동상을 수상(2007)하는 등, 발레리노로서 터를 다져온 그는 2010,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또 다른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롭게 뻗어나간 가지는 사진작가.’ 어릴 적부터 창작을 좋아했던 그는 역동적인 신체언어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티스트에서 정지된 시각언어로 에너지를 수렴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동사에서 명사로, 명사에서 동사로,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적 공간과 시간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꿈은 만화가나 목수였어요. 중학교 때는 미술 공부를 했고, 2 때 무용과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했죠. 발레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니 스스로 개발하고 창작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관심이 갔어요. 특히 시각적 영역에 호기심이 많아서 친구들과 패션사업도 했는데, 그때 사진에 매력을 느끼면서 하나씩 익혀나갔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주변 스튜디오에 발품을 팔아가며 물어보곤 했거든요(웃음).”

그는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의 색과 향을 온몸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그의 원체험이 된다. 어쩌면 상상을 시각화하고 싶었던 의지는 그때부터 생겼을지도 모른다.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일련의 발걸음은 자신을 지도 삼아 떠나온 창작의 여정이었다.

“20대 중후반에 국립발레단에서 나왔으니 일찍 나온 편이긴 하죠. 그런데 더 있다가는 안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빨리 방향을 틀었어요. 현실적으로 한계도 느꼈죠.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처음 무용을 했을 때처럼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막상 저도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되더라고요. 어머니는 늘 제 편에서 제가 약해질 때마다 넌 할 수 있다. 네 말에 대한 책임은 네가 꼭 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채찍과 어머니의 당근이 적절히 있었기에 잘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유로워 보이지만 평범한 사람,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칙을 따르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 그리고 나와 타인 중 누가 관찰자가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상대속도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직장에서 도중에 나오거나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하면 한없이 자유로울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아요. 평생 규칙을 따르며 살아와서 쉽게 벗어날 수 없거든요. 제도권 속의 저도 인간적으로는 평범해요. 그 안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개성 있는 작가가 되려고 하는 거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언어의 습득으로 이어졌다. 이는 사진, 영상, 퍼포먼스, 시각예술을 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자기 증명을 하기 위함이다. 아직까지는 사진이라는 언어가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찰나의 연결성과 시간을 담아내는 영상물도 시도하고 있다. (신체), 움직임,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가장 나다운 작품 만들어내는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제 프로젝트는 관계에 대해 되묻고 있는데, 개인전에 우체통을 설치한 것도 그것의 일환이에요.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고 관람객들과 재밌는 아이디어와 질문을 주고받는 관계인 거죠. 무대에서는 정확한 피드백 없이 몸짓으로만 표현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요. 뭔가를 규정함으로써 관객들이 사로잡히는 게 싫어서 작품에 제목도 달지 않았어요. 앞으로 일 년에 두세 편의 영상물을 선보이고,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들을 하며 더 많이 소통하려고요.”

그의 초기 작품에는 내추럴 색상이 많았던 반면에 최근에는 모노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어떤 색으로 되어 가는데, 이는 변화일까 변질일까. 그는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늘 고민이에요. 작가로서 첫 5년 계획 중 작년에 80%성과를 이뤘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죠. 올해가 그 첫해라서인지 이상하게 착잡하고 제로 상태예요. 슬럼프 아닌 슬럼프처럼. ‘내 한계인가싶다가도 아직 성장할 부분이 많은데 스스로 더 찾아야지 왜 멈춰있어?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해요. 이겨내야죠(웃음).”

발레리노로서, 작가로서 무대 위 신명 나는 한판을 벌일 때면 늘 희열감과 공허함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의 역설은 결국 기조력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라는 밀물과 썰물의 순환 속에서 작가로서 6년을 버텨온 그는 숨을 고르며 새롭게 담금질을 한다. 앞으로 5, 그리고 또 5, 성장의 나이테를 새기며. 다시 상상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 김신영 편집장 

사진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

사진2: . 이를 모티브로 서울발레시어터의 가 제작됨.

사진3: <험담>(2018).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는 말의 위력.

사진4: (2018). 코드화가 되어가는 인간.

사진제공: 박귀섭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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