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상상의 공간] 여행의 순간들 / 권학봉, 사진작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여행도 좋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마냥 거리를 걸어 다니는 여행도 좋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루만 묵고 다른 마을로 가는 건 별로인데, 왜 그럴까 싶어 생각해 보니 여행에 따라붙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낯선 곳에 도착하고 나서 느껴지는 주변의 풍경과 낯선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들에 둘러싸이는 순간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 되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목표도 있고, 꼭 촬영해야 하는 장면도 있다. 스케줄도 만들어야 하고 동선을 고려한 이동 수단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고심해 계획을 세워도 날씨가 협조하지 않거나 조사한 것과 현장이 많이 다르면 스트레스도 늘어난다. 다른 이들이 그런 것처럼 일하러 가는 도중에 짬을 내는 게 내 여행의 전부인 셈이다. 남들이 볼 땐 정말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는 것 같지만,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였다. 로힝야 촬영을 목적으로 수도인 다카에 입국했다. 비행기 환승을 위해 2박을 해야 해서 약간의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카메라 하나만 덜렁 매고 다카 시내를 여행할 수 있었다. 다카는 세계적으로 큰 강들에 둘러싸인 삼각주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거리에는 묘한 카레 냄새가 흐른다. 사람들은 어디든 넘치도록 많지만 그렇다고 필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비행기도 연착을 밥 먹듯이 하는데 당황스럽게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그런 야릇한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다. 방목하는 소떼들의 정신없는 울음처럼 차량들은 아무 때나 클랙슨을 마구 눌러대기 때문에 시각적인 분주함보다 몇 배나 더 사람을 정신없이 만든다. 버스와 승용차가 뒤섞이고 트럭이며 3륜 릭샤, 그리고 페달을 밟아 가는 자전거 릭샤까지 거리는 혼돈 그 자체다. 이런 빌어먹을 교통상황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물길이 중요하다.

소음에 등 떠밀려 나도 모르게 강으로 향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부리강가강 주변은 바퀴가 배로 바뀐 것뿐이지 혼돈은 여전하더라. 분주히 강가를 오가며 노를 젓는 쪽배들 주변으로 수백 명은 탈 수 있는 거대한 여객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그 사이로 금방 가라앉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늙은 화물선이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지나간다. 그래도 물길은 꽉 막히진 않으니 도로보다는 나은 셈이다.

나는 별 목적도 없이 쪽배를 빌려 타고 강을 건너가 보기도 하고, 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의 지붕에 올라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일에 쫓기는 사람들 주변을 최대한 느리게 어슬렁거리면서 나 혼자 휴일 기분을 내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강둑 주변에는 자연스레 노점들이 즐비한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발을 파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카메라를 치켜들며 승낙을 기다리자 고개를 끄덕인다.

촬영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촬영하는 나와 신발 노점 주인을 구경하며 한마디씩 평을 하는 것 같았다. 구경꾼들과도 눈인사를 하며 한동안 신발 파는 남자를 관찰했다. 비닐에 싸인 신발은 슬리퍼부터 운동화, 구두까지 다양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주인은 익숙한 동작으로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턴다. 무슬림답게 콧수염을 모두 밀고 남겨 놓은 턱수염은 이미 백발이다. 더운 날씨에도 잘 다린 바다색 셔츠까지 챙겨 입은 걸 보니 장사 꽤나 한 듯 보였다. 한동안 촬영을 위해서 장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남자는 이제 구경꾼들의 한 줄 평에 동참한 듯 보였다. 그러더니 나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을 쓰윽 들어 보이며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내 모습을 촬영한다. 내가 촬영하는 남자 역시 오늘의 기억을 가족이나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다.

이상한 외국인이 와서, 장사하는데 사진을 찍어 가더라.”

신발장수의 사진은 말을 증명하는 기록일 것이다. 그 사진은 제 몫을 충분히 발휘할 것 같았다. 길거리의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신발을 하나씩 들어 먼지를 터는 남자 역시 내 컴퓨터 속에 남아 오늘을 기억하게 할 것처럼 말이다. 그의 사진 속에 있는 내 모습이 궁금하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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