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 배움과 성장 /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

아주 어렸던 8살 때부터 어른들은 왜 화를 내고 때릴까라는 질문을 품었는데,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갈등 상황에서 왜 그토록 폭력적으로 변할까?’라는 아픈 호기심의 질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뚜렷한 방법을 못 찾은 채, 막상 화가 나면 억누르고 자신을 비난하거나 화를 터뜨리며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생각해보면 내가 자신을 비난하며 행동을 고치려 할 때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지만 행복이나 진정한 관계와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타인에게 화를 쏟아내고 나면 상대의 진심 어린 변화를 보기 힘들었다. 상대는 마지못해 움직였고, 나 자신도 그런 타인에게 만족 못 하거나 안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 후회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합리화에 젖어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슴속 질문은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좀 더 강한 질문을 던졌다.

살아가면서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시작으로 비폭력대화를 배웠다. 외국에서 온 지도자들의 워크숍을 통해 배우고 동료들과 연습하고 관계 내에서 차근차근 다져가면서 어느덧 비폭력대화 강사이자 트레이너가 되었다. 비폭력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대화의 행위만 다루는 게 아니라 내면에 잠재한 폭력성을 알아차리고 감정과 욕구를 기반으로 평화롭게 소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강력한 도구였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정신약물을 먹는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나누었을 때, 비폭력대화라면 모든 게 가능할 거라 믿었던 큰 확신은 여러 번 좌절됐다.

내 삶에는 그토록 강력한 비폭력대화의 방법이 적용되기 힘든 상황과 대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를 공부하고 그간의 배움과 시행착오를 통해 <연결의 대화>라는 교재를 한 대기업과 협력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13년 가까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특강이나 대화 훈련 워크숍을 기본 8~10주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혼모, 수녀, 신부, 목사, 입양 부모, 초중고교사, 대학교수, 판사, 부모, 기업 대표, 직장인, 연구원, 의사, 사회복지사, 공무원, 장교, 용병, 대학생, 고등학생, 자영업자, 방송인, 일반 강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표면적인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말과 행동을 결정짓는 타고난 기질과 트라우마와 같은 극한 상황의 경험, 그것을 처리하고 회복시켜줄 환경의 여부에 따라 변화되는 성격같은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결정짓는 것들을 연구하며 적용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연구소는 인간의 모든 것, 좀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는 라는 한 개인이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식, 정서, 인지, 관계를 건강하게 회복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기질, 성격, 태도, 말을 공부해보고 싶은 개인적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다양한 대상들과 짧게는 1, 길게는 3달씩 만나서 대화 훈련을 진행해보면 정서적으로 많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조직 안에서의 어려움과 개인적인 삶의 고통도 나누게 된다. 한 개인의 어려움이 보편적 어려움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문제처럼 함께 고민하고 돕는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의 합리적 방향성을 찾게 되었다. 결국 대화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내가 말하는 사람의 입장일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들을 명확하고 친절하게 상대에게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다. 상대를 책망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하지도 못할뿐더러 얻게 된다고 해도 관계는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둘째, 내가 듣는 사람의 입장일 때 우리는 상대의 의도를 이해해보자라는 의도로 들을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듣게 되면 우리는 종종 듣기에 실패하고, 상대로부터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 두 가지 간단한 진실은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부모와 교사,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원하는 게 되지 않을 때 갖고 있는 힘을 사용해서 상대를 억압하거나 자신을 억압하는 폭력적 방식이 몸에 배었기에 익숙하지 않은 재훈련이 필요하다.

가끔 새로운 삶의 대화방식이 이상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잠시 묵상하듯 생각해본다. 내가 어린 날, 부모님이 서로에게 두 가지 진실의 대화 방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저 방식으로 대화했을 때 아이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나 역시 얼마나 뿌듯했었나. 싸움도 갈등도 더 깊은 연결의 기회가 되는 대화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꾹꾹 참다가 소리 없이 끊어버린 인간관계나 미친 듯이 화내며 다신 안 볼 태세로 끝장을 봐온 경험들을 떠올리면 슬프고 아쉬운 애도가 한없이 밀려오면서 다시금 평화로운 대화와 관계를 위해 힘을 얻는다.

최근에 나는 인간연구소의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시작은 표면적인 말과 행동에 관한 일이었지만 차차 내면의 역동과 메커니즘이 궁금해졌고, 앞으로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종종 떠올렸던 죽음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하고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 또한 바람에 가깝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며 깨달은 게 있다면, 스스로 세운 인생의 계획에 변수가 있어왔기에 구체적인 계획도 크게 잡지 않는 편이다. 돌아보면 삶의 모든 경험들이 성장의 과정이었고 스스로가 회복되는 과정이었으며 나아가 타인을 돕는 힘이었다. 앞으로의 인생 또한 무엇을 경험하든 배움과 성장이 되어 인간을 이해하고 돕고 아름답게 살아가며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게 아닐까.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고 관계이며 대화가 될 수 있게 말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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