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상상 밖의 만남-남극에서 우주정거장에 이르기까지/ 서은숙, 천체물리학자·美메릴랜드대학교 교수

나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어린이였다. 우물 밖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고나 할까. 삼십여 년 전 낯선 나라 미국으로유학길을 나설 때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참으로 겁 없이 덤빈 무모한 도전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영리해서 성공 확률을 따졌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조금은 미련한 듯해야 우직하게 오래 참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 원하던 유학이었지만 사실 나는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고, 계획이나 상상 밖의 만남의 연속이었다. 학생이 NASA에서 박사논문 연구를 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아폴로(Apollo)선의 달 착륙과 바이킹(Viking)호의 화성 탐사를 TV로 가슴 설레며 본 적은 있지만, 내가 훗날 NASA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닐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을 직접 만나 악수를 할 줄이야.

NASA에서 박사논문 연구를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남극 대륙에서 거대한 풍선을 띄워 우주선(cosmic ray) 연구를 하게 되었다. 고에너지 우주선 검출기를 개발해서 풍선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조금 큰 축구장 크기의 벌룬에 매달아 띄우는데, 그 거대한 풍선으로 자동차 3대 정도 무게의 장비를 40km 고도에서 비행한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대륙이기도 하고, 가장 건조한 곳이기도 하다. 남극의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낮의 연속이다. 새벽 2시나 오후 2시나 밝은 대낮이다. 단지 해의 방향만 바뀐다. 그곳의 겨울은 밤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극의 여름인 12월에 풍선을 띄운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동부에서는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로 가서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탄다. 호주를 거쳐서 가기도 하는데,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라는 곳의 미국 남극 프로그램(USAP)에서 극한 추위 속 생존에 필요한 의복과 부츠 등 생존 장비들을 받고, 군용 수송기를 탄다. 나의 첫 남극 방문은 C-130 화물기로 8시간 걸려 미국 기지 맥머도(McMurdo)에 도착한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운이 없게도 날씨가 나빠서 착륙하지 못하고 다시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가야 했는데, 부메랑 비행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참고로 이 여객기가 아닌 화물기에서 사람은 단지 유연한 화물일 뿐이고, 일등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고생스러운 긴 여정을 거쳐 화물기가 바퀴 대신 스키를 이용해서 착륙한 후 얼음 위에 눈으로 다듬은 활주로에 내리면 거대한 에루부스 활화산이 처음 눈에 띈다. 지구상 어디도 비슷한 곳이 없다. 오히려 달나라에 더 가까운 풍경이다. 나무나 풀 등, 푸른 식물이 하나도 없고 사방이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는데, 인류 문명의 힘에 의존하는 도시에서만 성장했던 나는 자연의 압도적인 힘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남극조약에 따라 남극은 군사 행동과 자원 채굴 등을 금지하는 한편,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고 대륙의 생태 환경을 보존하도록 되어있어서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 외에도 특이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아주 재미난 이다. 본 직업이 변호사인 사람이 남극에 접시 닦이로 와있기도 하고, 학교 교사가 운전기사로 와있기도 한다. 그들 모두 남극광들이라고 할까?

벌룬은 한번 발사하면 약 한 달간 남극 상공에 체류하며 우주선(cosmic ray)을 검출한다. 나는 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우주실험의 한계였던 테라볼트(TeV, 1012승배) 이상의 고에너지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측정했고, 이 고에너지 우주선이 기존의 우주선 가속전파 이론으로 예상했던 바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이보다 더욱 높은 고에너지에서의 측정을 위해 지난 2017년에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우주선 검출기를 탑재하였다. 스페이스-X 발사 날에는 버즈 올드린이 직접 축사를 했다. 앞으로는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고에너지 영역을 탐구하여 입자의 가속·전파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거대한 별이 폭발하는 초신성과 같은 우주 가속기를 연구하고 암흑 물질과 같은 미지의 현상을 규명할 계획이다.

우주사업은 국가 간 경쟁이 심하고 국방과 관련되어 있어서 견제도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대국으로 쌍벽을 이루는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여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들었다. 이는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위해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을 필요로 하는 우주개발 및 우주의 비밀을 탐사하는 연구를 통해 첨단 과학기술의 성장과 과학기술의 글로벌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내 사무실에는 남극 방문 때 구입한 남반구의 지도가 걸려있다. 북반구의 지도와 달리 남극이 위에 있는데, 북반구 달력 위아래가 뒤집어진 모양이다. 그것을 보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협상과 협력에 얼마나 중요한지 날마다 배우고 있다.

 

* 고려대 물리학과 학사, 석사,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박사. 미국 대통령상 수상(1997), KEI 올해의 미주한인상(2017). 46대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 역임. NASA 지원의 크림 프로젝트 총책임(1998~). 미국물리학회 평의원. 메릴랜드대학교 물리학과 종신교수.

 

사진출처: (남극 사진) http://cosmicray.umd.edu

(워싱턴포스트 사진) ©Washington Post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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