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내 그림 / 신흥우, 화가

내 그림의 주제는 항상 누구나혹은 아무나이다. 고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그림의 모티브인 셈이다. 때로는 시장 어귀의 어느 허름한 대포집에서 본 주름 깊은 나그네의 얼굴일 수도 있고, 인적 드문 내 작업실 옆길을 깔깔대며 지나가는 해맑은 꼬맹이들의 모습이기도하다. 또한 십여 년 전 에펠탑 앞 기념품 가게 주인의 뚱뚱한 모습일 수도 있고, 찰리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영화 속 인물일 수도 있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내 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처럼 천차만별인 기억의 편린들은 과거와 현재 구분 없이 놀이동산의 열차처럼 때론 빠르게, 때론 천천히 지나간다.

기억하기 싫은 아픈 기억, 즐거운 기억을 준 사람들, 혹은 잡지나 꿈속에서 본 사람이거나 그야말로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 구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동 기술적으로 실리콘 주사기를 통해 사람들의 형상을 그려서 만들어낸다. 이렇게 탄생한 수백 수천 가지의 형상들은 각기 태어난 시간과 기억의 연관성들을 무시당한 채 아무렇게나 뒤섞여 그저 한 점 그림 속 일원이 되어 운명적인 만남(인연)을 이루며 영원히 박제되고 가둬진.

이런 모티브와 작업 과정 속에서 연관 지어본 나의 근작 <도시의 축제>도시라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더욱 살을 보태기에 편안한 장소로서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도시라는 곳이 차가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이뤄진, 때로는 피 튀기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장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항상 따뜻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득 찬, 흥미로운 사람들이 활보하는 에너지 넘치는 곳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표정의 사람들은 실로 모두 다 나의 공짜 모델들이다. 요즘 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 그려온 실제 모델 습작들과 아무데나 휘갈긴 수많은 낙서들의 결과로 주어진 소산물이라고 할까.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각기 다르게 생긴 흥미로운 모습들은 내 가슴 속 깊이 존재한 게으르고 둔한 열정을 자극한다. 항상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내 작업 공간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뒤섞인, 알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자 범 코스모스적인 인간들의 세상이다.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재미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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