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는 애초부터 틀려먹었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제공 

특별하다. 보통보다 머리 하나쯤 솟은 큰 키, 좀처럼 닮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얼굴, 제아무리 ‘금천구 체육센터’가 쓰인 탈개성의 티셔츠 안에 꾹꾹 눌러 담아도 이광수는 단박에 눈에 띄는 사람이다. 전국팔도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웃을 연기하기엔 애초부터 틀려먹었고, 무엇이든 그려넣을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얼굴이란 수식어도 획득하기 힘들다. 이광수는 ‘특별함’이라는 태생적 핸디캡을 가진 배우다.

5월1일 개봉한 육상효 감독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이광수가 연기한 동구는 ‘지적장애인’이다. 얼굴 빼고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세하의 휠체어를 끌며 서로의 머리와 몸이 되어 살아간다. 가족도 포기한 이들을 거두어 키운 신부는 “사람은 일단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지만, 세하와 동구의 삶은 혼자서는 그 기본 책임조차 수행해내기 녹록지 않다. 

특별함을 심화하는 캐릭터들

함께 다니는 통에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한 쌍, 이들의 관계가 흥미로운 지점은 핏줄이 아니라 ‘필요’가 기반이 되어 맺어진 사회적 형제라는 점이다. 동구의 머리는 은행에서 현금인출요청서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유아적 수준이지만, 동구의 육체는 수영으로 어린 시절부터 잘 훈련돼 있다. 세하의 육체는 빨대 없이는 물 한 잔도 못 마시는 상태지만, 세하의 머리는 공부부터 돈벌이까지 세상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동구의 육체와 정신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정반대의 조건에서 세하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거슬림 없는 화음이 된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특별했던 한 명이, 다른 특별한 한 명을 만나 마침내 평범한 이웃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다.

특별함이란 때론 한 인간을 수식하는 긍정의 말로 쓰이지만, 각자 다르게 특별한 자들은 결국 한 사회의 ‘마이너리티’이자 ‘아싸’(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이광수의 필모그래피는 대부분 돌연변이 같은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비범한 소수자를 향해 유독 발달한 그의 촉수를 따라간 리스트(목록)일 것이다.

배우 이광수의 얼굴을 대중적으로 알렸던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의 가수 지망생 ‘광수’는 가만히 살펴보면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 같은 존재였다. 고길동 옆집에 살며 <라면과 구공탄> 등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가수 지망생 마이콜처럼, 광수 역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지만 사실 순재네 가족의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김형준 감독 영화 <간기남>(2012)의 기풍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데이터베이스망을 구축”하기 위해 모텔의 증정용 라이터를 수집하고, 전국 4만5천 개 모텔의 이름만 들어도 주소를 줄줄줄 외우는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다.

권오광 감독 영화 <돌연변이>(2015)에서는 제약회사 신약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 대상에 자원했다가 “반인반어로 변이한” 청년 박구를 연기했다. 육체가 비늘로 덮여가는 ‘생선인간’이 된 박구는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인기도 얻지만 이내 시들해져버린 대중의 관심과 제약회사의 음모 속에 점점 고립된다. 93분의 상영시간 동안 줄곧 생선 대가리 탈을 뒤집어쓰고 등장하는 <돌연변이>를 통해 이광수는 자신의 특별함을 완화하는 대신 심화한다.

자신을 향하여 부딪히는 ‘기린’

그러고 보면 <나의 특별한 형제>를 통해 ‘특별한 형제’의 인연을 맺은 배우 신하균은, ‘돌연변이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광수에게 제대로 직계 선배다. 괴상한 장비를 쓰고 지구에 침입한 외계인을 잡아서 물파스로 고문하던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에서 집요한 ‘돌아이’ 병구는 한국영화사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독창적인 별종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속 한복집 아들부터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에서 악당 이무배까지 신하균이 연기한 캐릭터들이 기괴한 가학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육식성 인물이라면, 이광수를 거쳐간 캐릭터들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초원을 달리는 무해한 초식동물 같다.

TV 예능프로 <런닝맨>을 통해 전 아시아로 퍼져나간 ‘기린’이라는 별명은 이광수의 독특한 외양을 설명하는, 더할 나위 없는 비유다. 단순히 190㎝가 넘는 껑충한 키뿐 아니라, 긴 목에 좁은 얼굴, 좌우로 살짝 늘어지듯 처진 눈, 크고 긴 코, 동그란 코끝, 두툼한 입술로 라면을 후루룩 삼켜 오물거리거나,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는 이광수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기린화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기린은 종종 머리를 사용해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강력하게 타격한다는데, 이 ‘인간 기린’이 연기하는 인물들 역시 그렇다. 대신 공격 방향이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한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동구는 수영장을 가고 싶다거나, 스트레스가 극한에 다다르면 벽에 머리를 반복해서 찧고 박는다.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연기한 민수 역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괴로워하며 가게 셔터에 이마를 쿵쿵 박는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나온 수광은 어린 시절부터 투렛증후군(중증 복합 틱장애)을 앓는 청년이다. 하우스메이트 부부의 잠자리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 수광은 갑작스럽게 머리로 벽을 치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타인에게 주먹을 날리는 대신 자신을 해하는 인물들. 그래서 이광수의 액션은 짜릿하고 신나기보다 짠하고 슬프다.

위부터)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돌연변이> <간 기남>. 각 영화사 제공 

다양한 역이 기대되는 ‘기린아’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이 특별한 청년은 마치 더 주목해서 보란 듯이 화려하게 옷을 입는다. 이언희 감독의 <탐정: 리턴즈>(2018)에서 ‘여치’는 숨어서 일하는 해커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도 각양각색의 패턴이 그려진 긴 가운을 입고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 김성훈 감독의 <마이 리틀 히어로>(2013)에서 알록달록 유치찬란한 ‘썬더맨’ 의상을 입은 연극배우 정일은 피부색이 다른 소년 영광(지대한)과 가장 빠르게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어른의 태도가 아니라, 애초부터 나이와 사회적 구분에 스스로를 포함시킨 적 없는 사람 같은 태도다. 전통적 위계질서 속으로 들어간 적 없는 인물만이 보여주는 허물없는 친밀감, 훼손되지 않은 마음을 유지한 채 웃자란 소년. 그건 어쩌면 이광수가 달리고 숨고 잡는 ‘놀이’에 최적화된 <런닝맨> 같은 예능에서 누구보다 빛을 발했던 이유기도 하다.

<나의 특별한 형제>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배우 이광수를 “스릴러 장르나 악역도 기대되는 배우, 누구에 의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쓰임이 있을 배우”라고 평한다. “보통 코믹 배우라고 인식하는데, <마스크> <덤 앤 더머> 같은 영화의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짐 캐리가 <트루먼 쇼> <이터널 선샤인>에서 정극의 드라마를 얼마나 탁월하게 소화해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덧붙인다. 돌연변이들의 좋은 친구, 무해한 별종 초식동물 같은 배우 이광수. 이 특별한 배우는 영화라는 정글에서 어떻게 생존하게 될까.

[출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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