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한복, 꿈을 짓다 / 임순옥, 침선장

 


 

침선장을 아시는지요? 침선(針線)이란 바느질로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기술을 말하는데, 이러한 기술로 조선시대에 왕실의 복식을 담당했던 장인을 침선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전통복식을 재현하고 복원하며 전통 침선이 계속하여 전수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무형문화재(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2) 침선장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마이산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입니다. 깊은 시골이다 보니 교육받을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고, 그 옛날에는 여자가 공부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배움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저는 전문직 여성으로 살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상경하여 이모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이모님은 서울 시장이셨던 윤치영님의 의상 담당으로 한복을 제작하고 계셨습니다. 이모님을 돕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하고 한복을 지었는데, 결국 이렇게 일평생 침선에 전념하며 살게 되었네요.

결혼 후에는 워낙 좋은 바느질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찾아와 한복을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한복을 짓느라 밤잠을 설치면서도 그저 바느질이 좋아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속에는 기왕 시작한 바느질, 제대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늘 있었기에 혼자 박물관을 찾아다니고 전통복식 관련 책을 구입해서 읽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독학의 한계를 느꼈고, 새벽 첫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하루 종일 공부하고 심야 막차를 타고 내려오는 만학도 생활을 근 20년을 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궁중복식 연구원,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원, 건국대학교 침선전문가과정 등에서 이론과 실기를 심도 있게 공부한 것입니다. 체력적, 경제적, 그리고 시간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그저 바느질이 좋아 침선 공부를 하는 게 마냥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한복하면 많은 분들이 구시대의 전유물이나 불편해서 쉽게 입을 수 없는 옷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전통복식은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부담 없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짓는 것도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단과 바느질은 최고로 고급화하되, 디자인과 기능성은 현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 제가 바느질한 옷을 입으신 분들은 옷맵시나 디자인에 매우 만족하고 계십니다.

침선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출토복식과 궁중복식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대한명인으로 선정되고, 여러 공모전에서 대상과 장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우리 전통복식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수차례의 개인전과 전시회, 그리고 국내외 다양한 패션쇼를 진행하면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전북 군산에서 30여 년간 임순옥 한복연구실을 운영하며 많은 전수자들을 길러낸 것도 저에게 있어서는 큰 보람입니다.

 

전통복식으로 세계를 누빈 침선장이지만, 아직도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지금껏 재현한 수백여 점의 궁중의상과 출토복식을 비롯한 장신구 등과 제가 평생 동안 모아온 복식유물들을 언제든 누구나 감상할 수 있고,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복식의 맥을 잇기 위해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한복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대학의 전통복식과가 점차 사라져 가고, 지원정책이 미흡하여 무형문화의 맥을 잇기엔 열악한 현실이지만, 사라져서는 안 될 소중한 전통복식 계승을 위해 한복박물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평생 한복 짓는 것을 가장 행복한 일로 여기며 살아온 저에게 주어진 침선장으로의 고귀한 사명을 다하고, 대한민국 최고, 세계 최고의 명품 한복을 짓기 위해 저는 오늘도 바늘을 잡습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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