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쉼(休) / 김인숙, 화가


 

 

사람들은 저마다 쉬는 방법들이 각기 다르다. 음악을 감상하고, 영화를 보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독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쉬는 등 너무도 다양하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은 무엇일까? 언뜻 한자 조합만을 보면 사람과 나무가 함께 있는데, 여기서 나무는 자연을 의미한다. 각박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쉼은 새로운 출발점이며 내면의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시간의 배려이다.

나는 색, , 여백, 자개 등으로 한국의 ()를 보여주고자 한다. 베갯모의 길상어문(吉祥語紋), 기하문, 자연문 등과 문자의 조형성을 채색과 문인화 기법을 통해 쉼을 위한 심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주제로 한 내 작품들을 보면, 수묵이 지닌 미학으로 설명 가능한 문인화 작업이다. 그리고 감각적인 채색과 현대적인 면모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진 한국화와 새로운 재료를 회화에 접목한 자개 작업 등, 평소 한 번쯤은 접해본 이야기의 단초들이다.

이러한 기법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쉼이라는 심상에 내재하는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어서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이라는 주제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작가로서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화두를 이끄는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자연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 태화강이었을 것이다. 태화강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십리대밭을 표현하기에는 화폭의 한계가 있었지만, 감각적으로 표출된 과장과 생략으로 태화강의 풍경을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었다.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태화강의 넉넉한 품에서 쉬어가는 풍경은 내 작품 세계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쉼이라는 화두에 덧붙여진 요소는 자개자수이다. 태화강이 내 보금자리 외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자연을 상징하는 쉼터라면, 자수와 자개는 삶의 공간인 집안에서 찾아낸 작은 안식처이다. 이들은 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기억에 기반하고 있다. 다양한 생활용품에 담긴 자수 문양을 작품에 넣은 것은 가장 원초적인 쉼을 나타낸다. 극도의 피곤함에 잠이 든 나는 베개에 수놓인 꽃무늬와 마주하고, 이는 안식처가 되어 심신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런 연유로 쉼의 상징인 자수의 느낌을 회화로 옮겼고, 세필(細筆)로 수없이 덧칠하여 독특한 질감을 표현했다. 화려한 색상의 자수 놓인 천이라는 모티브는 그 자체로도 주제가 되어 화면을 채우고, 먹과 어우러져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개도 내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풍족함의 상징인 자개농에 대한 기억과 감각으로 아늑한 공간을 보여준 것이다. ()의 상징이자 나의 태몽에 등장했던 한 자개(호박에 노란빛을 입힌)작품을 자개 중심으로 작업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웃음을 머금은 부엉이 얼굴을 연출하여 그간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자개를 덧붙임으로써 나만의 부엉이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발톱 부분에 자개를 붙이니 화룡점정(畵龍點睛) 아닌가.

자개와 자수는 전통적으로 여성문화를 상징한다. 그런데 나는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다. 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는 삶의 구체성과 만나 지향하고자 하는 작품 세계로 연결된다. 이로써 나와 삶의 반경이 겹치지 않는 이들에게는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그리고 나와 유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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