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발바닥 사이

글 전성표

걷는 것은 땅을 만나는 것이다. 땅을 밟는 것이다. 현대인은 땅을 밟지 않는다. 걷는 능력을 상당히 잃었다. 나는 걸으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땅끝에 접한 하늘을 봤다. 그늘 없는 햇빛 아래를 걸었다. 인생에 가장 많은 무지개를 봤다. 내 몸은 잊고 있던 걸음 본능을 깨달았다. 비로소 태고의 상태와 조금 가까워졌다.

 

인터넷 포털 검색 엔진에는 연관 검색어라는 것이 있다. 홍대라고 치면 연이어 ‘홍대 맛집’, 노무현이라고 치면 ‘노무현 재단’, 강남이라고 치면 ‘강남 세브란스병원’이 자동 완성돼 나오는 식이다. 그러면 검색창에 ‘땅’이라고 치면 무엇이 나올까? ‘땅 매매’가 자동 검색되어 나온다. 땅과 관련한 현대인의 관심사는 매매다. 사고파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땅을 사고팔았을까?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17년 조선의 토지매매 건수와 면적은 1920년에 들어서면 3년 사이 1.6배 정도 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진행되던 시기다. 그때 토지의 상품화가 급격히 이뤄졌다. 토지조사사업이란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토지제도를 확립할 목적으로 실시한 사업이다.

나는 몇 년 전 이베리아 반도를 1000킬로미터 넘게 걸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남북한 면적의 네 배 크기로 프랑스 남단 피레네 산맥 이남을 지칭한다. 동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아프리카, 북쪽은 유럽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걷는 것은 땅을 만나는 것이다. 땅을 밟는 것이다. 내 발바닥과 땅 사이에는 등산화 밑창이 있었다. 옛날에는 발싸개의 재료인 풀이나 나무껍질, 짐승 가죽이 있었을 것이고 더 오랜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원시 시대에는 다들 그냥 맨발로 다녔을 터이니. 땅과 발바닥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점점 그 무엇이 가로막고 있다.

1000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등에는 10킬로그램 안팎의 배낭이 있다. 중력 때문에 배낭끈이 어깨를 파고든다. 중력은 발바닥과 대지 사이에 멈춘다. 많은 순례자는 고통을 덜기 위해 ‘비브람(Vibram)이라는 등산화 밑창이 있는 신을 신는다. 이 밑창이 용하다는 소문이 있다. 부질없는 짓이다.

 

당신은 ‘블리스터(blister)’라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 아니, 알게 될 것이다. 약국에서 이 단어를 말하며 도움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물집’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등산화와 소문난 밑창이 있어도 당신은 발에 물집이 잡힐 것이다. 이것은 땅이 당신에게 준 충고다. 걷지 않는 인류에 대한 경고다.

땅은 사람이나 동물의 발이 밟으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땅을 밟지 않는다. 바퀴 위에서 미끄러져 이동한다. 그래서 걷는 능력을 상당히 잃었다.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신발을 신는다. 순례길은 이러한 잃어버린 능력을 복기하는 과정이다. 순례가 주는 선물은 물집이다. 나는 물집 때문에 병원을 두 번 갔지만 걷는 능력은 점점 좋아졌다. 1000킬로미터를 걸으면 거리에 비례해 점점 지쳐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내 경우 600킬로미터를 넘기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걸음은 점점 빠르고 경쾌해졌다. 걷는 디엔에이가 회복되는 것이다.

내가 걸었던 이베리아 반도 1000킬로미터는 성지 순례길이다. 벌판이나 숲이었던 곳, 길이 없던 곳에 순례자들이 땅을 밟고 밟아 길을 만들었다. 대다수 동물은 일정한 길을 따르지 않는다. 길을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길을 만들고 길로 다닌다. 이곳은 길이 없었다. 순례자들이 밟아 길이 생겼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긴 거리를 걸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곧 또 갈 것이다. 또 갈 생각을 하니 설렌다. 왜 설렐까? 길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쁘다. 도시인은 땅끝이 무엇인지 모른다.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때 끝없이 이어지는 땅끝에 접한 하늘을 봤다. 다시 숨이 찰 것이며, 그늘 없는 햇빛 아래를 걸을 것이다. 땀이 나겠지. 다시금 배낭끈은 어깨를 파고들고, 비가 오면 판초를 뒤집어쓰겠지. 판초를 뒤집어쓰고 걸으면 배출하지 못한 땀 때문에 온 몸이 젖을 것이고, 아무리 좋은 등산화라도 다시 신발 속에 물이 들어갈 것이다. 그로 인해 신발은 불쾌하게 질퍽이며 꿀렁거릴 것이다. 다시 물집이 잡힐지도 모르고, 그럴 때면 다시 나는 약국에 들러 연고와 밴드를 구입하게 되겠지. 스틱을 가져간다면 개가 다가와 짖을 때 그것을 휘휘 저으며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겠지. 고통 속에 내 몸은 다시, 잊었던 걸음 본능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은 태고의 상태와 조금 가까운 모양으로 다가갈 것이다.

 

순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을 순례자들은 카미노 블루(camino blue)라고 한다. 예견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왜 내년에 다시 갈 계획을 세우는가?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생활이다. 사업 이야기도 직장 이야기도 없다. 모든 이야기는 오로지 걷는 것에 집중돼 있다. 오늘은 얼마나 걷게 될까, 어떤 풍경이 나올까, 내 발은 괜찮을까? 이게 전부다. 오로지 걷는 것에 집중한다. 날마다 간단한 음식을 먹는다. 다리가 아프고 카페가 보이면 쉰다.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간다. 앞 하늘을 보다가 힘이 들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본다. 내 등산화 코를 본다. 그게 전부다. 내가 이렇게 심플한 삶을 산 적이 있을까? 그 삶이 무척 그립다.

나는 지구 위에서 반백년 넘게 살았지만 땅을 사고파는 재미를 모른다. 단 한 번도 사고 판 적이 없다. 나는 사회를 모른다. 자본주의를 모른다. 하지만 땅을 밟는 기쁨은 안다. 몇 년 전 1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으면서, 우리 조상들이 경험했을 아주 오랜 이동방식은 안다. 나는 몸을 안다. 그 기쁨은 땅을 사고팔아 돈을 모으는 재미보다 크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남들이 메고 다니는 배낭에 곁눈질을 한다.

전성표 – 이웃사랑교회 목사다. 날마다 걷고 자전거를 탄다. 웬만한 거리는 늘 자전거로 이동하며 자주 여행길에 든다. 많이 읽고 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여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 이 글은 생태환경잡지 <작은것이 아름답다> 266호 특집 ‘땅’ 꼭지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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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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