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날아오르는 춤, 날아오를 꿈 / 발레리노 안재용

뭐든 과하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들이 표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아보고 경험하는 인간의 감정들이기 때문이죠.”

 

“(),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육체여 오, 빛나는 눈이여/ 우리는 어떻게 춤과 춤추는 이를 구별할 수 있는가?” 예이츠의 *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 걷다 보면 물아(物我)와 피아(彼我)의 구분이 사라진 한 발레리노의 몸짓언어가 떠오른다. 무대 위 아름다운 발화(發花), 이를 온몸으로 발화(發話)하는 발레리노 안재용(27)의 힘차고 섬세한 화법이. 시가 춤을, 춤이 시를 불러들인 것이다. 세계 정상급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몬테카를로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그는 육화된 정신의 언어로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써 내려간다. 자신만의 응축된 시간을 무대의 역동적인 시간으로 치환해 모두를 위한 황홀한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적인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명작 <신데렐라>14년 만에 내한하면서 그 찬란한 언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파격과 혁신의 문법으로 풀어낸 현대적인 내러티브 안에서 그는 얼마나 자유롭게 비상할까. 인터뷰의 서막을 작품 이야기로 열어보았다.

“<신데렐라>는 입단한 첫 시즌에 베르사유 궁에서 공연했어요. 또 다른 주역인 아빠 역을 맡았는데, 그때 객석에 모나코 공주 캐롤라인이 관람 중이었죠. 공연 후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저를 찾아와서는, 보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며 제 손을 잡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의 경험은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로서 엄청난 감동이었죠. 캐롤라인 공주가 느낀 그 감동을 한국 관객에게도 꼭 전달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그가 한국에서 프로 무용수로서 선보이는 첫 무대이다. 그만큼 그에게도 한국 관객들에게도 뜻깊은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기본적인 서사와 구조의 큰 골자는 그대로 두고, 등장인물의 묘사와 심리적 갈등, 극적 장치 등의 디테일에 변화를 준 <신데렐라>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정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왕자와 신데렐라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신데렐라 부모의 사랑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엄마가 사후에 신데렐라를 도와주는 요정으로 등장하거나 딸과 홀로 남겨진 아빠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죠. 캐릭터 사이의 드라마와 유리 구두 대신 등장하는 금빛 발도 큰 차이점인데, 마이요 버전의 <신데렐라>에서는 이 중요해요. 감정 묘사와 극적 상황,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드라마를 따라가는 것은 하나의 재미이자 관람 포인트죠.”

이처럼 고전을 재해석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킨 인물은 바로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이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대표적인 모던 발레단으로 부상시킨 이 감각적인 예술 감독과의 만남은 그를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하루하루 배움과 충격의 연속이에요. 세계적인 거장의 지휘 하에 수석무용수로서, 또 훌륭한 안무가의 무용수로서 춤을 춘다는 건 굉장히 영광이고 즐거운 일이죠. 그와 작업하고 있으면 엄청난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자서전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읽어주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제가 그의 다큐멘터리 속 한 인물이 된 것 같죠.”

그는 18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발레를 시작했다. 다양한 꿈들로 가득 찬 유년 시절이었지만, 정작 발레가 꿈의 지면을 채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릴 적 우연히 접한 다큐멘터리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을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성형외과 의사를 꿈꾼 적도 있고, 미술을 전공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발레를 하게 된 건 성악가 누나의 영향이 컸어요. 18살에 누나가 제 방에 놓고 간 영화 <백야>를 본 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죠. 첫 장면에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롤랑 프티 안무의 <젊은이와 죽음 Le Jeune homme et la Mort>을 췄는데,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3번 연속 돌려봤고, 그대로 발레의 길로 향했죠.”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신체조건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좋은 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최고의 레이서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차를 어떻게운용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늦게 찾아온 꿈은 강렬했고, 길은 명료했다.

힘든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남몰래 흘린 눈물도 많고. 그럴 때면 나보다 먼저 시작한 선배와 친구 무용수들을 보면서 그들도 다 지나간 하나의 과정이구나여기며 묵묵히 해왔죠. 제 성격도 한몫한 것 같아요(웃음). 늦은 만큼 얼른 따라잡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내가 좋아서 시작했으니 중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지금도 너무나 즐기고 있고요.”

입단 후 줄곧 주역을 맡으며 2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는 등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온 그는 자신을 믿고 맡겨준 발레단의 신뢰에 감사함을 표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공존했지만, 공연을 거듭하면서 이는 곧 자신감으로 변해갔다. 매 무대마다 단장과 안무가, 객석의 요구에 상응하려고 노력했고, 거기에 자신의 예술적 해석을 더해 최대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제 춤을 보고 자신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움을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무엇이든 관객의 뇌리에 남는다면 그 자체로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우리가 느낀 점들을 표현하고 산다면 예술가가 될 수 있는데, 거기서 오는 다양한 표현 방식들을 만나는 건 큰 기쁨이에요. 저는 실제로 음악, 영화,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받고 있어요. 일상에서나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갑자기 영감이 찾아올 때가 있죠.”

수없이 날아오르고, 또 날아오를 그는 <백조의 호수>(마이요 안무)에서 맡은 왕자 역을 가슴 한구석에 새기고 있었다. 가장 나다운왕자를 표현하려고 했고, 특히 차이콥스키의 음악 선율로 빚어진 예술 행위가 그를 전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 작품으로 그를 만나보기를 기대해본다. 전 세계에 발자취를 남기며 창조해나갈 그의 예술 세계도. 경계를 넘어 한계에 도전하며 부단히 깎이고 다듬어질 그 시간의 퇴적층을.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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