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풍경에서 발견한 생명의 기운 / 홍경표, 화가

나는 대상을 통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이면의 대상에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이면의 표현에 집중한다. 그것은 대상으로도 존재하고, 대상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세상의 일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설명 가능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논리적인 명료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논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대체적으로 필요와 편견으로 조종된다. 눈은 선택하고 거부하고 구성하고 차별하며 연관 짓고, 분류하고 분석하며 조립한다. 즉 눈은 선택적이면서도 창조적이다.

회화는 말 없는 사유이고, 철학은 말하는 사유이다. 가시적 형태를 통해 비가시적 대상을 표현하려면 과학에서 배운 모든 것을 잊어야 하고, 이를 통해 풍경의 구조를 다시 유기체로 포착해야 한다. 기존의 과학지식으로 길들여진 눈을 씻어내고 새롭게 풍경을 보는 것이다.

나에게 그림이란 풍경에서 발견한 생명의 기운을 색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생명의 기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소재와 대상을 찾는 것은 고향 앞바다의 힘찬 파도에 익숙한 탓이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강렬하고 힘찬 생명력을 느낀다. 예술에는 공통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힘을 포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다. “보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는 클레의 유명한 말처럼 회화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로 정의될 수 있다.

메를로퐁티의 연구에서 미술과 연관된 주요 개념으로는 가시계비가시계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4)에서 제시했듯이 비가시계는 단순히 가시계의 반대가 아닌 가시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잠재적인 토대와 같다. 바다 위 빙산의 꼭대기처럼 비가시계는 어느 지각에나 존재한다.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범주로서 개별성을 관통하고 넘어서는 수평 구조인 셈이다. 메를로퐁티가 설명했듯이 비가시계는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의 반대가 아니고, 그것의 안감을 대는 것 혹은 그것의 깊이라고 봐야 한다.

야경과 파도 등의 사실적인 형태감을 형성하는 나의 화면은 실상 가까이서 보면 반복과 두터운 마티에르, 힘찬 필치, 원색에 의해 구축된, 형태를 가늠하기 힘든 추상적인 색들의 조합이다. 중요한 것은 두터운 마티에르와 힘찬 필치라는 행위이다. 나는 여기에 순간순간 어떠한 무의식적인 전이의 힘을 조형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형태와 두터운 마티에르, 그리고 힘찬 필치와 색감에 의한 순수한 상징성과 심리적인 효과를 발산하는 주요인이다. 나의 풍경이 풍경 이상의 효과를 획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소재와 대상이 무엇이든 생동감이 결여된 것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거칠고 스피디한 터치와 명징한 색의 병치를 선호한다. 이러한 나의 회화적 기법인 마티에르, 터치마다 갈라지는 원색의 색채는 일상 사물에 내재한 빛과 운동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회화적 효과이자 나의 심리 상태를 전이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실재하지 않은, 그렇다고 실재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대상을 안다는 것은 세계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시적인 형상을 통해 비가시적인 대상을 보면서 또 다른 실체와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대상의 실제(real)인지도 모른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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