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A.P.C

■ 이슈 소개

 

일흔여덟 번째 매거진 입니다.

 

저는 쇼핑을 꽤 즐기는 편입니다일상에서 쇼핑만큼 순간 집중력과 활력을 끌어올리는 일도 드물기 때문입니다물론 가끔은 무엇을 살지여러 제품 중에서 어떤 것을 취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피로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급기야 어느 날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죠패션 브랜드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도 이 옷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칭송하지 않는 걸까왜 지난 성공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 자리를 황급히 뜨는 걸까특정 시즌 대부분의 브랜드를 집어삼키는 메가 트렌드를 납득하기 어려울 경우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집니다이전 시즌 선보인 멋진 원피스나 샌들을 다시 생산해 판매하는 일이 다소 게을러 보일 수는 있어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이런 종류의 아쉬움을 갖는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요사이 인스타그램에서는 ‘old~’로 시작하는 트리뷰트 계정이 인기입니다예를 들면 피비 파일로가 이끌었던 시절의 셀린느니콜라 게스키에르가 몸담았던 때의 발렌시아가 등 브랜드의 호시절을 추억하며 이미지를 아카이브하고지난 것의 아름다움에 나름의 방식으로 헌사를 표하는 것이죠.

 

이번 호에 소개할 아페쎄는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영리한 해법을 선택한 패션 브랜드입니다패션 산업의 흐름과 판도를 시시각각 뒤집는 하이패션업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속도와 패턴으로 브랜드를 운영합니다그 운영 방식이 시대가 바뀌어도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어서 ‘아페쎄 정신’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죠아페쎄의 매장에 방문해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하겠지만이들의 옷은 공격적으로 덤비거나 수선을 떨지 않습니다그리고 언제 어느 때 방문해도 아페쎄라는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그것은 전쟁터와 같은 ‘패션 필드’에서 드물게 접하는 일종의 안도감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외투를 디자인해야 한다면외투를 만들어야 합니다.” 브랜드의 창립자인 장 투이투의 단 한마디 말에 아페쎄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습니다그들은 패션사나 SNS에 길이 남을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옷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옷에 대해 고민합니다셀비지 데님 팬츠와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면 티셔츠와 스웻셔츠가죽 소재의 핸드백처럼 아페쎄는 옷의 기본 유형을 중심으로 매 시즌 컬렉션을 전개합니다데님은 데님의 할 일셔츠는 셔츠의 할 일재킷은 재킷의 할 일에 충실한 덕분에 각 아이템의 개별성이 어떤 브랜드보다 돋보이죠크리에이티브나 콘셉트라는 미명 하에 옷 자체의 개별성이 무너지는 일이 허다한 요즘 시대에 아페쎄는 브랜드를 시작한 1987년부터 지금까지 꽤 의미 있는 탐구를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뉴욕타임즈는 이들의 행보를 두고 “반항적으로 정상적”이라 평하기도 했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아페쎄의 옷을 ‘베이식’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단 1%의 의도도 없는 순백의 티셔츠’를 베이식이라 한다면 아페쎄의 옷은 베이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아페쎄의 베이식은 충분히 계산된 결과값이며일종의 ‘트릭’이 걸린 베이식에 가깝습니다우리가 인상적이라 느끼는 대부분의 슴슴한 음식이 그러한 것처럼요장 투이투 스스로도 아페쎄를 ‘편집된 현실’이라 일컫는데저는 이렇게 쉽고 편한 것을 만드는 ‘복잡한 사람들’을 흠모하고 지지합니다앞으로 점점 더 많은 창작자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단순한 것에 쓰길 바라는 마음도 있죠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편집장 박은성











 

[출처] 매거진 B(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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