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객관화되지 않은 정물 / 정기준, 화가

대굴대굴, 퍽퍽, 이리 쿵 저리 쿵.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내팽겨진다. 급기야 깨지고 짓이겨져서 온몸의 진액을 쏟아낸다. 알 수 없는 힘이 덮칠 때면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써보지만 허사가 되고 만다. 토마토가 감당할만한 외부의 충격은 그다지 높은 강도가 아니다.

누구나 토마토를 살 때면 깨지고 흠 있는 것을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을 갖고 싶고, 좋은 것을 먹으며, 좋은 것을 누리고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깨지고 짓이겨진 토마토에 관한 것이다. 깨진 토마토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 인생과 비교해보면 기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가 아니니 토마토의 외형만 보고 객관화 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토마토가 깨져서 꽃이 된다면 객관성은무너지고 아름답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고통의 멍에를 가득 안고 태어나서 평생 그 멍에를 내려놓지 못하고 살다 간다. 그런 인생이 그림 속 토마토처럼 깨지고 짓이겨지는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탐스러운 과일의 온전한 모습처럼 평안하고 넉넉한 인생을 꿈꾸겠지만, 누구나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고난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를 미리 준비해서 슬기롭게 인생의 굴곡을 지나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길목을 지키다 낯선 모습으로 우리와 맞닥뜨리고, 우리를 깨뜨리고 위협하며 무서운 기세로 점령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류사를 돌아보면 대개의 인간은 크고 작은 고난 속에서 새로운 꽃을 피웠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이 성경 속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사망은 절대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망 앞에서 부활의 꽃을 피웠다. 인생에 주어진 고난이란 새로운 꽃을 피우는 양분이나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토마토가 깨어질 때 소리를 내고 향기도 풍긴다. 모든 과일이며 채소가 그렇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모든 사물은 깨어져서 꽃이 될 수 있고, 우리도 깨어져서 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깨지지 않으려고 숨는 것보다 꽃이 되어 향내를 뿜어내는 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 육신이 아닌 마음이 깨진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변화의 의미이다. 모진 고난이나 인생의 회오리가 닥칠 때 내면은 깊은 변화를 경험하며 이는 곧 꽃이 된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인생의 길 위에서 나뒹굴다 보면 우리는 모두 꽃이 될 수 있다.

작품 속 거친 터치와 세밀하게 묘사된 토마토는 기법 상으로 대조를 이루면서도 시각적인 혼돈을 유도한다. 무엇이 실제이고 허상인지 잠시 혼돈하게 만드는 것이다. 삶도 늘 이 둘 속에 놓일 때가 많다. 실상처럼 다가오는 인생의 무게가 세월이 지나면서 허상처럼 우리 곁을 떠나기도 하고, 바람 같은 일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이렇듯 허상과 실상은 혼돈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을 객관화할 수 있는 틀이 없다. 채소나 과일이라고 불리고, 먹는 방법도 다양한 토마토를 보고 있노라면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소재 삼아 이야기를 꺼내본 것은 끝없는 인생 이야기의 다양하고 포괄적인 성격 때문이다. 토마토가 깨져서 꽃이 되듯 현재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당신의 삶에도 위로가 넘치기를 기도해본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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