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사는 법 l 셰프 오스틴강

4년차 패션모델인 오스틴강(30)은 어떤 옷을 입어도 ‘그림’이 된다. 185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와 근육질 몸매를 지닌 그가 무슨 옷을 입든 감탄이 절로 나온 다. 그중에서도 오스틴강이 가장 선호하는 옷은 명품 슈트도, 화려한 트레이닝복도 아닌 단정한 조리복. 모델 활동은 어디까지나 요리에 전념하기 위한 경제 적 수단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리사복을 제일 편안해하는 천생 셰프다.

 

 

 

모델 겸 셰프인 진정한 ‘요섹남’ 오스틴강은 요즘 한창 <나 혼자 산다> <비디오스타> 같은 대세 예능프로와 각종 요리프로에 출연하며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얼마 전 페루로 2주간 요리프로그램 촬영을 다녀온 그는 고산병에 시달려 부쩍 해쓱해진 모습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컨디션이 악화돼 목표한 분량을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온 상황이라 별 소득 없이 몸만 상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짐작했지만 그는 의외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출연자 들이 다들 심하게 아팠는데도 어떻게 하면 좋은 방송을 만들까만 고민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저도 요리할 때 그들처럼 열정적으로 집중하려면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요리와 방송을 같이 하느라 바쁘지만 요리에 도움 되는 마음자세나 정보를 배울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오스틴강은 지금의 과정을 괜한 고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어떤 고난이 와도 기어코 배울 점을 찾아내어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치열함은 한국에서 자신만의 삶을 맛있게 요리해나가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한국에 온 지 어느덧 7년째. 이제 한국어로 무리 없이 소통도 가능하고, 고향인 LA보다 현재 사는 서울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할 만큼 한국 생활에 잘 적응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부모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던 차에 미국에서 다니던 IT회사의 한국지사로 자원해 발령받아 온 이방인을 한국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부진으로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사막 한가운데에 혼자 버려진 막막함을 맛봐야 했던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가 가족이 있는 집에서 지내며 취업준비를 하는 편이 편했겠지만 그는 부모님의 나라에서 홀로 삶을 개척하는 험난한 길을 택했다. 어차피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미래라면 그 배경이 고국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두 발을 한국 땅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았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 홍삼 밭 인부, 헬스트레이너, 영어강사 등 단기계약직을 전전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처음 도전한 노점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

 

“괜히 한국에 남았나, 무슨 일로 먹고 살아야 하나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10키로나 빠졌었어요. 한강 근처에서 햄버거 노점장사를 시작했는데 큰 태풍 이 와서 장사가 안 돼 빚만 지고 접었거든요.”

 

타지생활의 쓴 맛을 제대로 봤던 그때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련 속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그는 다시 한번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준비 없이 욕심만 앞서면 실패로 돌아오는구나. 서두르지 말고 한국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때까지만 해도 생계유지를 위해 주방 보조로 취업한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천직을 찾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식 만드는 동안에는 나약한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매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요리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으니 우울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10시간 넘게 서서 일하느라 피곤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이 요리란 확신이 들자 아무리 어려워도 셰프가 꼭 돼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한 치도 보이지 않던 앞길을 선명히 비춰준 꿈을 향해 그는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기본기를 터득했다. 프렌치 레스토랑에 정식으로 취업한 후에는 15시간씩 요리하며 선배들에게 먼저 엄하게 가르쳐달라고 얘기했을 만큼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2년 넘게 요리공부에만 전념해오던 그가 한국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건 자신의 요리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출연한 요리 경연 TV프로를 통해서였다. 심사 도중 ‘매일 혼나면서도 포기 안하고 달려왔다’며 흘리던 눈물은 그동안 그가 얼마나 외롭고 혹독한 수련과정을 버텨왔는지 보여주는 듯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요리사의 꿈을 위한 인고의 시간들이 결실을 맺었던 걸까. 9000여 명의 지원자 중 5위 안에 들며 그동안 갈고닦은 요리 실력을 마침내 인정받는 기쁨을 누렸다.

 

“힘든 수련과정이 없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외국에서 요리를 배워도 됐는데 모든 걸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죠.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나 저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아 늘 외로웠거든요. 꼭 한 국인으로 정착해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요리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지만 그쯤에서 안주 할 그가 아니었다. 이태원에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을 오픈해 자만하지 않고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요리하겠다는 각오로 자신만의 고유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더 악착같이 노력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메뉴를 연구하고 새벽 1시까지 장사하는 고단한 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녹초가 된 몸으로 불 꺼진 집에 들어설 때면 미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어준 건 새벽시장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이었다. 서툰 한국어로 재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낯선 청년에게 덤을 얹어주고 고생 많다며 등을 두드려주는 투박한 손들이 지친 마음을 따뜻이 어루만져주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말도 안 통하는 저를 가족처럼 챙겨줬던 주방 식구들, 항상 잘 될 거라고 응원해주던 교포 친구들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죠. 친구들이 있어 이제는 한국이 내 집처럼 편하고 좋아졌어요.

 

고난이 닥칠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시간들 속에서 한국을 향한 사랑이 점점 커지고 있었음을 그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작년에는 꽤 큰 금액의 출연료를 제시하던 유명 기업의 CF 대신 미국 NBC <투데이쇼>에 출연해 소맥, 치맥 같은 한국의 식문화 트렌드를 소개할 정도였으니 고국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짐작할 만하다. 생계나 목표 외에도 한국문화 전파에 눈길을 줄만큼 삶의 여유를 찾았나 싶지만 그는 또다시 자신을 출발선에 세워두었다. 맛집으로 소문나 3년간 성황리에 레스토랑을 운영해 왔음에도 그는 프랑스 요리가 어쩐지 자신의 메뉴가 아닌 것 같아 얼마 전 과감히 가게를 접었다. 대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제 인생의 다음 챕터는 고국의 음식을 자랑할 수 있는 셰프가 되기 위한 공부에요. 페루에 갔을 때 거기 셰프들은 전통음식을 자신 있게 소개하는데 나는 한국사람인데도 한국음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정말 부끄러웠어요. 전국을 돌면서 향토음식의 유래나 깊은 맛을 내는 방법을 배울 생각이에요.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쉐프 도전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자처하는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다만 그 길의 끝에 다다를 무렵이면 그토록 원하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한국음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꿈이 땀흘리며 달려온 그를 맞아줄 것이다.

 

글 한재원 기자|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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