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은실박이의 아름다움 / 승경란, 전통금속공예가

어제도 오늘도 습관처럼 삭삭삭 숫돌에 정을 가는 소리로 하루를 연다. 철로 만들어진 정을 가는 소리는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주고, 그날 할 일에 대한 자신과의 대화로 이어지게 한다. 참으로 평화롭고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탕탕탕 경쾌한 망치소리와 함께 나의 일상은 또 다른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내 작업실은 열려있는 공간이다. ‘전통금속공예(은입사 銀入絲)’ 작업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힘들지는 않은지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그럴 때면 사람 만나는 것에도 운명이 있듯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도 운명이 있는 거 같아요라고 하며 잠시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유년시절, 나에게는 외할머니와 보낸 기억이 많다. 정겨운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언제나 단아한 한복에 쪽을 찐 모습이 엄격해 보여서인지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곱게 차려입은 옷차림으로 집안일을 하시는 것이 불편해 보였지만, 할머니의 손길이 닿는 순간 집안 곳곳은 아름다운 모습들로 가득 찼다. 그때부터였을까. 할머니의 살림살이 하나하나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할머니 곁에서 옛 물건을 다루며 지키는 것을 배우고, 자유로운 손놀림으로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며 기뻐한 유년시절을 돌이켜본다.

내가 은입사 작업을 시작한 지 벌써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 지인의 소개로 지금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의 모든 생활이 신세계였고, 세상에 이런 재미있고 멋진 일이 있구나 하며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중요무형문화재 입사장 홍정실 보유자)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그렇다면 입사 공예란 무엇일까. 이는 철이나 청동 등의 단단한 금속 표면에 조각이나 쪼임 기법으로 바탕에 홈을 내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표면 장식 기법 중 하나이다. 헤아릴 수 없는 망치소리와 함께 긴 시간을 묵묵히 인내해야만 하는 작업이기에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금속공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입사 기법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발전했는데, 특히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시대에는 불교용품으로 입사 기술이 가장 화려하게 발전했고,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들로 확대되어 생활용품에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특히 입사공예품에 표현된 문양들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부귀영화의 문양들이었는데, 이는 사대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것들이 대중화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하고, 몇몇 선생님 덕분에 명맥이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 또한 나의 입사 작업에 많은 변천사를 겪으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돌파구를 꾸준히 찾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신구인데, 호기심 자극에 좋은 반응이다. 조금은 느리고 힘들지만 우리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은입사 작업에 커다란 자긍심을 갖고 발전시켜야 하는 기법이다.

 

 

앞으로 나는 입사장(국가무형문화재 제78) 전수교육조교로서 입사 공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금속공예의 하나인 입사 공예가 세계로 뻗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따라서 나의 망치소리도 우리의 것을 지켜내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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