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의 그림카페] 절망에서 피어난 꿈 / 이근희, 일러스트레이터

불과 몇 년 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암 환자였다. 일과 육아로 휴식이라는 것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했던 나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오로지 투병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두 아이의 엄마였기에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고, 내가 의지할 데는 오로지 사랑하는 가족과 방 한구석에 방치해 둔 오래된 물감과 스케치북이었다.

어쩌면 암은 나에게 있어서 휴식처럼 찾아온 친구였다. 항암치료로 인한 후유증으로 비록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덕분에 보이지 않던 가족과 자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몸짓, 하늘의 뭉게구름, 보도블록 사이로 뾰족이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풀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처럼 보였다.

이제 막 핀 봄꽃은 아름다워요. 반해서 쳐다보며 생각합니다. 열흘이 지나면 너는 없겠지. 나란히 서 있는 아이를 봅니다. 너의 지금도 다신 없겠지. 잎이 무성한 큰 나무가 되어도 열 살의 너는 아닐 테니까. 봄꽃도 아이도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은 늘 마지막입니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병원 서천석 교수님의 강의가 인상 깊게 다가와 이 문구들을 이 글에 그대로 옮겨보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서히 변해가고, 소멸될 준비를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사라질 모든 존재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종이 위에 기록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꽃과 자연을 그리며 나 자신을 치유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그려가며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의 얼굴을 표현할 때면 내면의 슬픔과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픔을 잊게 해 준 치유의 그림들, 새하얀 스케치북에 수채물감의 질료가 갖는 성질과 물의 조우로 나타나는 우연의 터치와 번짐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펜으로 거침없이 스케치를 하고 나서 붓으로 색을 입힐 때의 희열은 그림 그리는 자만의 특권과도 같았다. 이렇게라도 아름다운 것만 그리면서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들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사진을 보고 그리는 작업은 관점이 고정적이기 때문에 생동감이 떨어져서 실사를 보고 그리는 것만 못하다. 사진은 그저 구도나 밑그림에 대한 기억의 보조 수단일 뿐이기에 나는 내가 그곳에 있다고 상상하며 그린다. 그러면 흡사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레스토랑 앞을 지나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풍경 사진을 보고 그릴 때에는 습관처럼 나 자신을 그곳에 그려 넣곤 한다. 어쩌면 이는 나와의 약속처럼 되어버렸다. 아마도 대리만족에 대한 보상처럼. 나는 사진의 주인과 만나 꼭 그곳에 대한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다. 전에는 스페인 세르비아 성당 앞 광장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을 공유해주신 지인과 30 분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그곳에서의 느낌을 황홀한 듯한 표정으로 즐겁게 전해주셨다.

어느덧 작품 수가 제법 늘어나면서 개인전을 생각하게 되었고, 운 좋게 작가 공모에 당선되었다. 첫 번째 개인전은 나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중 두 점의 그림은 뉴욕 맨해튼 MC갤러리에서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내 작업을 눈여겨보신 모교 교수님께서 손수 가져가셔서 국제 그룹전에도 합류할 수 있었으니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나도 오늘만 바라보며 살던 때가 있었다. 건강을 잃고 치유의 길로 선택한 그림이 비로소 나에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미래에 지향을 두면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랜마 모제스(Grandma Moses)75세에 월간에세이 에세이 에세이추천 수필 이근희 일러스트레이터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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