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찍힌 아내의 발자국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초저녁잠이 많아지는 대신 상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음 날 새벽 시간이 넉넉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확보되는 시간이 대략 3시 간 남짓. 상황에 따라 산책을 나가든지, 아니면 글을 쓰든지, 책을 읽든지, 또는 SNS를 뒤적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한다.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무래도 새벽 산책이다. 안개가 몽환적으로 피었다든가 눈이 차분하게 쌓인 날이면 한 아름 귀한 선물을 받은 듯 맘이 설렌다.


잠결에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니 잠이 깰락 말락 할 즈음에 ‘어머 나, 눈이 왔네?’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말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매일 아내는 나보다 이십 여분 먼저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 어수선한 꿈에 두어 번 뒤척인 탓에 다소 몸이 묵직했지만 눈이 왔다는 소리가 반가워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아내는 성경책을 챙겨들고 새벽기도에 가고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거짓말처럼 밤 새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소담스레 내린 눈이었고 쌓인 눈이 가로등 불빛을 튕겨내며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마침 잔잔하게 불어주는 찬바람으로 인해 묵직하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내 산책로는 아내가 가는 교회의 방향과 반대편인 나무와 풀들이 적당한 학교 운동장 쪽이었다. 그 길은 우선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 좋았다. 남들이 흉을 본다는 아내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내 새벽 산책은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가끔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설 때도 나는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라고 말했고 아내 역시 당연한 듯 머리를 끄덕이며 교회로 향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서로 정반대 방향이었다.


습관처럼 산책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두어 번 걸음을 옮기는데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하얀 눈 위에 선명 하게 찍힌 아내의 발자국이었다. 현관문에서 시작된 아내의 발자국은 예외 없이 교회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른 시간인 탓에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었고 오로지 아내의 발자국뿐이었다.


걸음을 주춤대는 사이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이 목 낮은 운동화를 타 넘어 안으로 들어와 발에 선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억하기로 아내가 새벽기도를 갈 때 즐겨 신는 운동화도 목 낮은 내 운동화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도 현관 내 운동화 옆에 곱게 놓여있던 아내의 목 낮은 운동화가 생각났다. 교회까지의 거리가 집에서 대략 300미터였지만 그런 운동화라면 도착하기도 전에 아내의 발이 흠뻑 젖을 것이 뻔했다. 시간상으로 운동화를 갈아 신고 가도 될 터인데 눈 위에 찍힌 아내의 발자국을 확인해보니 미련하게 다시 돌아온 흔적은 없었다.



‘사람이 말야….’


나는 혼잣소리로 구시렁거리며 아내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발자국의 보폭이 새 발자국인양 종종 찍힌 것을 보니 나름 눈길을 조심한다며 걸은 모양이었다. 중간쯤에서 아내의 발자국이 일직선에서 벗어나 쫓기는 동물의 발자국인양 산발적으로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게 보였다. 걱정이 되어 몸을 숙여 발자국을 자세히 살피니 분명 왼쪽 발이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인 듯했다. 엉덩방아를 찧었거나 무리하게 손을 짚은 흔적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이 사람, 조심 좀 하지 않고 말야.”


나는 아내가 곁에 있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어쩌다 아내는 새벽길이 무섭다며 동행해 줄 것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 마지못해 바래다주면서 손 한 번 잡아 주지 않고 하나님이 지켜주시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놀리기도 했다. 그런 놀림을 받으면서도 아내는 나와의 짧은 동행이 든든했던지 활짝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았지만 그 사이 내 운동화 속이 축축해져왔다. 나는 얕은꾀를 부려 아내의 발자국에 내 발을 겹쳤다. 그렇게 하자 역시 운동화를 타 넘던 눈이 한결 적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내의 발자국 위에 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치 가슴이 사정없이 밟히는 듯 울컥울컥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산지 어언 34년이 지났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매일매일 이른 새벽에 교회로 향하는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냉기 가득한 교회의 찬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아내는 어떤 간절함을 호소하고 또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거기에는 많이 모자란 남편인 내가 염치없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었다. 갑자기 매운 눈보라를 정면으로 맞은 듯 얼굴이 따끔거리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눈 위에 찍힌 아내의 발자국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부부란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길을 가는 동행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시간 나는 아내에게 어떤 동행인으로 존재해 왔을까? 이 새벽 눈 위에 홀로 찍힌 저 발자국처럼 아내 혼자 그 길을 외롭게 간 것이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내의 발자국에 더 이상 빌붙어 서 있을 수 없어 조용히 한 쪽으로 비켜 걸음을 내딛었다.



얼마 후, 교회 앞에 도착해 뒤돌아보니 아내의 발자국에 덤을 얹듯 묻어 왔던 흔적보다 나란히 찍힌 두 쌍의 발자국이 더 안정적이고 보기 좋았다. 그 사이 교회 정문을 지났고 거기서부터는 새벽기도를 나온 사람들의 발자국 속에 아내의 발자국이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다. 나는 교회 마당을 기웃거리며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아내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아내의 발자국은 사람들의 발자국 속에 있었지만 익숙하게 찾아졌다. 비로소 알 수 없는 안도가 밀려와 울컥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새벽기도가 끝나려면 아직도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나, 둘, 셋…’.


열 두어 개 아내의 발자국을 찾아 세었을 때 기도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에요?”


“그, 그냥….”


나는 잘못하다 들킨 아이처럼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산책을 하고 시간이 남아 지나가는 길에 들러 같이 가려고 했다고 대답했다면 더 좋았을까? 아니면, 목 긴 신발이라도 챙겨 와 ‘발 시릴까봐 마중 왔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함께 살아오면서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나는 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홍종의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계몽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떴다 벼락이》 《초록말 벼리》 《영혼의 소리 젬베》 등 80여 권의 창작동화책을 펴냈습니다.

 

[출처] 샘터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샘터

샘터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