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더 나은 미래를 위해 / 마빈 천, 美 예일대학교 학장(석좌 교수)·신경과학자

인생은 수많은 만남이 모여 서로의 관계를 넓혀가며 이루어진다. 우연과 필연 속에서 누군가를, 또 무엇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정해지고,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들은 삶의 조류를 형성한다. 나 역시 20년 넘게 학자로 살아오면서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그 시절 그 순간 내 곁에 찾아온 어떤 만남을 통해 성장해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1970년대 후반 12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새롭게 첫발을 내디딘 나는 무엇보다 한국어라는 언어적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외국인 학교 대신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한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는 곧 낮은 학업 성취도로 이어졌고,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사춘기와 청소년기는 한국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한국어라는 결코 완만하지 않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숨 가쁘게 그 산을 오르며 나만의 학습법과 각고의 노력 끝에 다행히도 한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면의 부침과 혼란으로 가득 찬 그 시절, 나는 우연히 심리학과 만나게 되었다. 내 안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심리학 저서들을 읽으며 조금씩 알아가면서 흥미로운 세상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심리학이 인간의 삶에 너무도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앞으로의 전공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길라잡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생활이 대학교와 대학원, 그리고 교수 생활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훈련이 잘 된 덕분에 이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스스로 역경을 이겨내는 법도 배웠다. 그 값진 시간은 내가 학자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해준 단단한 뿌리가 되어준 것이다. 대학시절에도 물론 한국어는 가파른 산이었지만, 평생의 은사이신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길게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분들과 더불어 오늘의 나를 만나게 해준 또 다른 존재들은 훌륭한 제자들, 그리고 나와 같은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아내이다. 이들 모두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수학, 프로그래밍 등 수리적인 것에 재능과 흥미를 보였던 나는 대학 시절 정찬섭 교수님을 만나면서 전공인 심리학을 나에게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연구 기법과 기술을 배우며 더 많이 성장했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연구는 무엇인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UC버클리로 교환학생을 가서 앞으로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어떻게 밟아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후 MIT를 거쳐 하버드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는 동안 지도 교수인 낸시 캔위셔(Nancy Kanwisher)와 함께 뇌 영상 촬영을 이용해 인간이 어떻게 뇌에서 얼굴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 즉 시각에 의한 인지 과정 분석을 밝혀냈다. 사실 이런 좋은 성과는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장치(fMRI)의 개발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뇌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지만, 1991년 이전에는 그 아득한 세계를 공부할 수 있는 도구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마치 망원경 없이 거대한 우주를 공부하고, 현미경 없이 미생물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눈부신 과학의 진보로 인간이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지면서 미래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각, 인지는 모두 뇌에서 나오기 때문에 뇌 활동을 제대로 이해하면 지금보다 더욱 뇌를 향상시킬 수 있다. 자동차 엔진을 연구해야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해서 수리할 수 있듯이 뇌를 공부해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다. 사실 의식한다는 것은 뇌 활동의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의식 상태와 무의식 상태를 기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과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자각(自覺)’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면을 통해 꿈과 만나게 될까. 우선 꿈의 첫 번째 기능은 기억의 저장이다. 그날 일어난 일들을 뇌가 상기하고(remind) 재생(replay)하는 것으로, 마치 비디오를 다시 돌리듯 재생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만들어지고 더욱 강화된다. 두 번째는 뇌의 정화이다. 식기세척기 속 식기들이 세재로 말끔히 닦이는 것처럼 뇌 속의 부산물도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

그동안 뇌의 영상 이미지와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면서 인간의 기억, 주의, 의사 결정 등과 관련된 뇌 부위를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인간의 뇌 활동이 어떻게 행동으로 드러나는지 추적해가며 자폐와 치매,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등을 치료할 수 있는 기초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 뇌과학은 나와 우리,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받아온 감사와 은혜를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밝히는 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고 만나는 창이 열리길 바라며.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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