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차이, 전통에 정통하다 / 김영진 한복 디자이너

온고지신(溫故知新). 김영진 디자이너(50)의 세계, 맞춤복(custom made) ‘차이 김영진기성복(Ready-to-wear) ‘차이킴이 만들어내는 한복에는 전통에 정통한 가치, 그 차이가 담겨있다. 차이를 두되 구별 짓지 않고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는 창작자의 의지가. 연극배우에서 체루티1881’루이비통의 슈퍼바이저로, 아트컨설턴트에서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동안 뻗어온 삶의 가지는 한 편의 연극과 같다. 그녀가 직접 쓰고 연출한 흥미로운 텍스트, 그 독특한 미장센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 한남동의 작업실을 찾았다. 생략과 비움에서 움트는 입체감과 풍요로움, 모던하고 세련된 공간은 그녀의 작품과 닮아있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걸 좋아했어요. 시각적인 감성, 비주얼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뇌에 중첩되면서 뭔가를 표현하는 데 익숙했죠. 그렇다고 디자이너를 꿈꾼 건 아니에요. 그저 연극과 글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죠. 그림도 잘 그리진 못했는데, 색감에 대한 칭찬은 받았던 것 같아요. 살면서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문학적인 줄기에서 연극을 좋아했지만, 연극 자체가 썩 맞진 않더라고요.”

미적인 것에 대한 환상과 태도, 그 본능적인 끌림과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게 만들었다. 특유의 화법과 어조, 문장, 어휘력, 즉 창조적 언어로 개성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해온 것이다. 이는 한복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만나 그녀만의 유려한 문체(style)로 완성되었다.

어린 시절, 광장시장 한복집에 가면 형형색색의 옷감들이 너무 좋았어요. 화려한 색감에 대한 환상,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될 수 있는 모티브가 제겐 바로 한복이었죠. 이후 극단에서 전통극을 하면서 우리 옷, 전통춤, 소리 등에 더욱 관심이 생겼고, 생활인으로 살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한복 짓는 일을 하기까지, 모두 유기체처럼 연결됐어요. 인간은 상황의 동물이에요. 한 사람을 만드는 건 운명과 상황이죠.”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채 가늠하기도 전에 다변하는 요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온전히 자기 것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현실에 발을 딛고 묵묵히 꿈과 환상을 좇는 것도. 여기서 전통은 벽이 아닌 발판이자 창이 되어야 한다. 박제가 아닌 생물로, 남겨진 과거가 아닌 만들어가는 현재로. 그런 맥락에서 그녀는 18세기 신윤복<미인도>에 드러난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아름다움을 기본 콘셉트로 한복의 새로운 막과 장을 열었다.

장인이 전통을 연구해 재연한다면 디자이너는 전통미를 극대화하고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표현의 독창성은 디자인을 비롯해 소재에도 적용되는데, 레이스, 모시, 상주 명주 등 다양한 소재가 가능해요. 한복은 명사가 아닌 동사에요. 패션은 생선처럼 신선해야 하죠. 좋은 재료에서 좋은 옷이 나오듯 재료를 잘 봐야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요리사처럼. 패션은 학교를 떠나 현장에서 체험하며 배우는 거예요. 변화에 몸을 맡기며.”

그녀는 독창적인 한복 디자인의 세계를 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패션산업으로서의 한복은 현실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차이의 디자인을 카피한 유사한 복제품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해진 현실의 역학관계 속에서 물음표가 쌓여가지만, 자신의 마침표는 탐구 정신을 잃지 않고 고유색을 내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진심과 신념을 지키는 것만이 정도(程度)를 넘지 않고 정도(定道)를 걷는 길이기에.

창작에 있어서 전공도 중요하겠지만 인문교육이 기본이에요. 인간이 어떤 문명을 만들고 어떤 글과 작품을 생산했는지. 이를 통해 지적 능력을 고양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제 작업은 책에서 출발해요. 박선영 침선장의 바느질 수업을 듣고 한복을 짓기 시작했는데,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제게 책과 박물관은 또 다른 선생님이었죠. 루이비통에 있을 때 명품은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역사와 전통이 가치를 만들죠.”

그녀 말대로 전통은 당대의 새로운 발명이자 창의력의 총체이다. 따라서 전통에 대한 이해는 입체에서 단면으로, 그것의 변형은 단면에서 입체가 되는 건설적인 과정이다. 피카소가 수많은 소묘 작업을 거쳐 입체화를 완성했듯이. 그녀는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연극 <햄릿> 창극 <심청가> 영화 <해어화>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미스터 선샤인> 등의 의상을 맡으면서 늘 역사적인 고증이라는 커다란 밑그림에 자신만의 개성을 채색해왔다.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 한복은 강인함과는 대조적으로 은은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어요. 김태리라는 배우 자체가 체구가 작고 단아해서 한복과 잘 어울렸죠. 앞으로도 무대, 시나리오, 배우 등 합이 잘 맞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최근 무가(巫歌), 샤머니즘을 콘셉트로 기록 작업을 했는데, 무당이 역할 놀이를 하듯 옷을 바꿔 입는 모습이 연극적이었죠.”

차이(差異)’의 차이를 알아보고 모델 나오미 캠벨,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 배두나 등도 방문했고,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그녀의 한복 3벌을 구입해 전시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찾았지만, 그녀는 줄리아드 스쿨의 한 학생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한복을 무대 의상으로 하겠다며 찾아온 바이올리니스트였어요. 음악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들려주려고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치 있는 작품은 제값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며 할인도 거절했죠. 처음 있는 일이에요(웃음). 제가 만든 옷의 가치를 알아줘서 너무 고마웠죠.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디자인하고, 퀄리티 있는 옷을 만들자가 제 신념이에요. 제 옷에는 그런 저의 예민함과 섬세함이 들어있죠. 장인 정신은 사실 고집보다는 배려 아닐까요?”

요즘 박완서 소설가의 전집을 정독하고 있다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있다. “인생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원점이라는 말에서 지나온 시간의 둘레와 표면이 느껴졌다. 그녀는 다시, 바람의 방향으로 닻을 올리려고 한다. 패션을 유랑하는 항해사처럼. 그 망망대해에서 건져 올릴 김영진의 패션 전집이, 시간의 궤적이 궁금해진다.

.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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