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유튜버의 살맛나는 인생

 

박영자 할머니(69)는 한평생 불려온 이름보다 이제 ‘일산 할머니’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명이 바로 ‘일산 할머니’인 까닭이다. 전문 셰프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는 아니지만 그녀는 수십 년 동안 가족들을 먹여온 내공을 살려 정겨운 집밥 메뉴를 구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산 할머니 인사드려요. 오늘은 낙곱전골 을 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육수 준비했고요, 이렇게 당면도 불려놨어 요. 부재료인 야채는 저와 함께 보시면서 준비를 해보자고요.”


낭랑한 목소리로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박영자 할머니 가 부지런히 야채를 손질한다. 양파, 청경채, 팽이버섯, 청양고추, 호 박, 배추 등을 씻고 다듬는 과정이 싱크대에 설치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렇게 찍은 영상은 편집 작업을 거친 후 ‘일산 할머니’ 채널에 올라간다. 물론 요리, 촬영, 편집 모두 그녀의 몫.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박영자 할머니가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복지관에서 관 련 교육을 받은 게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수강생들 중 채널 개설까지 이른 건 그녀가 유일했다. 늘 배우고 도전하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이 번에도 과감히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저는 요리가 취미거든요. 내가 만든 요리를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 줄 때 참 좋아요. 그래서 요리 콘텐츠를 올리기로 정했어요. 일산에 살 고 있으니까 채널명은 ‘일산 할머니’로 하고요. 그런데 구독자들이 할 머니라 하기엔 너무 젊으신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일산 할머니’로 불리지만 그녀의 고향은 충남 홍성으로, 22살의 시골처녀는 건설회사에 다니던 9살 많은 노총각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남편은 당시 천안-장항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홍성으로 파견근무를 나와 있었다. 공사기간 동안 그녀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오며 가며 사랑방 청년을 눈여겨보던 부모님이 건실하고 예의 바른 하숙생을 딸의 배필로 점찍어둔 것이었다.

 

‘랜선’ 통해 전해지는 50년 요리 내공


갓 결혼한 새색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며 살림을 익혔다.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지며 50년 세월 동안 착실히 요리 내공을 쌓았다. 웬만한 채소는 직접 가꿔 찬거리를 만들었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는 일절 사 먹어 본 적 없이 직접 담갔다. 특히 북어와 디포리로 깊은 맛을 더한 그녀만의 특제 영양 간장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맛을 살린다.


파주에서 전원생활을 하다 남편과 두 식구 단출하게 지내고자 일산 아파트로 이사를 온 뒤에도 채소 가꾸기와 장 담그기는 거르지 않고 있다. 베란다에서 파를 키우고, 장도 띄우며 재료준비부터 공을 들인다. 오늘의 메뉴 낙곱전골에도 정성 가득한 재료와 양념이 들어간다. 영양 간장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손수 키운 대파도 국물에 썰어 넣는다.

 


“시어머니가 이북 분이신데 내장요리를 좋아하셨어요. 내장은 굵은 소금과 밀가루로 깨끗하게 씻어낸 다음 월계수잎, 소주, 생강, 콜라를 넣은 물에 삶아 냄새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지요. 내장 손질법은 이미 유튜브에 올려뒀어요.”


어느덧 ‘일산 할머니’ 채널을 개설한 지 1년. 재미 삼아 시작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줘서 힘이 난다.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 구독자 수 도 천명을 넘어섰고, 그동안 게시한 레시피와 비법들이 수십여 개에 달한다. 그중에는 낙곱전골처럼 특별한 보양식뿐만 아니라 비교적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밑반찬들도 많다. 노각무침, 우유계란찜, 양배추 김 치처럼 간편한 요리도 소개해야 구독자들이 한 번씩 따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낙곱전골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게 준비한 간편 요리는 연근조림. 일산 할머니만의 비법이라면 적당한 크기로 으깬 땅콩을 함께 버무려 씹는 맛과 고소함을 더한다는 것이다.


구독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실시간 방송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늘 그랬듯 혼자 힘으로 하려다 보니 쉽지만은 않아 첫 방송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실시간 방송 기능을 익히려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그만 실행 버튼을 잘못 누르고 만 것이다.

 


“준비도 안됐는데 구독자들이 들어오더라고요. 채팅창에 ‘일산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하나둘씩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격스러운 것보다 세수도 안한 얼굴에 완전 무방비 상태였거든요. 제대로 준비해서 방송을 켜고 싶었는데 얼결에 첫 방송을 하게 됐지 뭐예요.”


실시간 방송까지 시작한 후로 그녀는 더욱 바빠졌다. 편집만 해도 한나절이 걸리는데다 촬영 준비에 실시간 방송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촬영 준비를 할라치면 해는 중천이고, 편집 좀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밤이 되니 오죽하면 “해 좀 붙들어놨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안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유튜브를 하니까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매일매일 재미나게 보내고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유튜브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예요. 앞으로는 요리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일상도 추억으로 남겨 놓으려고요.” 일산 할머니의 맛있는 채널은 이제 더 ‘살맛나는’ 채널로 거듭날 예정이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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