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초심으로 진심을 다해 / 힙합 뮤지션 타이거JK

음악이 삶이 될 때, 삶은 곧 음악이 된다. 유려한 문체에 실린 묵직한 가사를 따라 미음완보(微吟緩步)하다 보면, 자기 안의 혹은 자기 밖의 세상과 끊임없이 조응하는 한 작가의 음악 언어와 조우한다. 그 고유의 언어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뮤지션 타이거 JK(서정권·46)1995년 솔로 앨범 <Enter the Tiger>로 데뷔했고, 1999년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상징적인 그룹 드렁큰타이거(Drunken Tiger)로 힘차게 포효했다. 이후 2013년부터는 윤미래, 비지(Bizzy)와 함께 ‘MFBTY’를 결성해 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러던 지난 2018, 그는 드렁큰타이거라는 시적 화자(자아)와의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정규 1<Year of The Tiger>(1999)부터 10<X: Rebirth of Tiger JK>(2018)*까지, 20년간 힙합이라는 광활한 터를 종단하고 횡단해온 내적 투쟁과 열정은 음악에 대한 강한 믿음과 올곧은 시대정신으로 수렴된다. 그 감각적인 감성으로 발아된 들의 공간을 인터뷰를 통해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간은 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힙합을 하면서 이런저런 선입견에 하도 안 된다는 말만 들으니까 세상이 나만 공격하고 있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죠(웃음). 그때 아버지께서 가끔은 Revolution(혁명)이 아닌 Evolution(진화)을 따르는 게 힘들지만 더 필요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사실 지금도 유효한 얘기죠. 돌아보면 저는 아버지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나침반처럼 쫓아다닌 것 같아요. 여러모로 너무 대단하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죠. 그만큼 돌아가시고 나서 혼란기를 겪었어요.”

롤 모델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은 상실감과 공허함이 지배한 내면으로 침잠하게 했고, 이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곡 중 하나라는 <Beautiful>의 시정(詩情)으로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다. “() 뾰족한 시곗바늘에 찔려 난 밀려나가/ 인생은 리어카 난 추억을 싣고 가마/ 뒤돌아봐 잃었던 여유를 주워 담아/ 눈을 감아 잠시 난 이곳에 혼자 남아().” 잘 알려진 대로 아버지 서병후 씨는 한국 최초의 빌보드지 특파원 등을 지냈다. 아버지는 1세대 팝 칼럼니스트로서, 아들은 1세대 힙합 뮤지션으로서 한국 대중음악계에 의미 있는 새 물꼬를 트고 다듬어왔다. 글로 세상을 기록한 아버지의 모습이 늘 존경스럽고 부러웠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상상력의 창이 되어준 일기장은 한 권 두 권 쌓여갔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힙합을 만났고, 왜 힙합이었을까.

힙합은 당시 제게 가장 와 닿는 장르이며 문화였어요. 백인에게만 인정받으려고 그들의 문화를 추종하는 것에 흥미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변을 떠돌다가 힙합을 접했는데, 충격이었죠. 내 생각을 풀어낼 직설적인 표현과 믿음이 있고, 단점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종이나 편견, 어떤 선을 지워버리고 서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문화였죠. 저는 계속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태권도에 빠져 선수도 되고 싶었고, 나중에는 사범을 하면서 단편 소설을 써야지 생각했죠. 지금도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언젠가 정식으로 작업해보고 싶어요. 어떤 장르가 나올지 궁금해요(웃음).”

그렇게 인연을 맺은 힙합의 강렬한 색과 결을 온전히 담아낸 드렁큰타이거의 시간은 이제 타임캡슐에 넣어져영원히 봉인되었다. 하나의 변곡점이 된 10집 타이틀처럼 그는 새로운 경계와 영역에서 타이거 JK’라는 화자로 말을 걸고 위로를 건네며 언어의 자장을 확장하고 있다. 음악 인생을 유유히 흘러온 플로우에 몰입(flow)하며 양감과 질감이 살아있는 소리의 명암을 찾아. 그 소리 위를 걸어온 동안 대중음악 생태계에서 힙합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낯섦에서 익숙함의 문화로 자리 이동을 했고, 문화적 양상도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앨범의 스킷(Skit)까지 사이트에 올라와 찬반 토론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더라고요(웃음). 한때는 올드하다, 요즘 걸 못한다는 말에 상처받기도 했어요. 사실 붐뱁은 힙합 장르 중 하나이지 올드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음악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잖아요. 변화와 흐름도 읽어야죠. 그렇다고 무조건 핫한 걸 만든다는 건 아니고, 끊겨버린 저희 세대 팬들부터 연결하는 작업을 하려고요. 이것도 진화의 과정인 것 같아요. 관객이 몇 명이든 지방 곳곳을 다니며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어요. 신인의 자세로 다시 데뷔했다고 생각했죠. 이곳은 정말 냉정하잖아요.”

대중문화에 확산된 ’(Meme) 현상으로 문화콘텐츠의 생산과 소비, 유통의 메커니즘이 재편되었다. 문화적 유전자의 전달은 복제와 패러디의 방식을 취해 무한 재생산된다. 밈 세대(Memenials)가 소비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화법이 지배적인 문법이 되어버린 힙합 역시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러한 경향성을 인지하고 인정한다 할지라도 꼭 지켜져야 할 힙합의 문화적 유전자는 무엇일까.

이제는 멋있는 말도 아니고 의미도 퇴색됐지만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중요해요. 힙합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요. 누구나 남의 스타일을 따라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스타일은 고유의 문체니까요. 헤밍웨이가 유행한다고 모두 따를 필요는 없죠. 저도 시도는 하고 있는데, 적어도 이런 문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아니더라도 신발 하나는 놓아줬으면 좋겠어요. 이건 타이거의 신발이니 언제든 신고 걸어갈 수 있게. 그 자리와 선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변하긴 하더라고요.”

누구나 자유롭게라는 모토로 참여를 유도한 필굿뮤직의 새 음원 프로젝트 필굿쨈스’(Feel Ghood Jams)의 첫 여정으로 그는 <심의에 걸리는 사랑노래><Kiss Kiss Bang Bang>(동일 곡, 다른 버전)을 발표했고, 수익금 전액은 코로나19 기부금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음원, 공연 등에 있어서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그가 최근에 천착한 주제는 소통공유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거예요. 현재 금전적 타격도 심하고 물리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 건강은 좋아졌어요. 어차피 바닥을 치고 나니 처음에 하려고 했던 것들, 진짜 해보고 싶은 것들을 경우의 수 안 따지고 해보려고요. 요즘 갇혀 있는 사람들끼리 SNS로 소통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아티스트, 크리에이터들이 너무 많아요. 취미라고 하기엔 실력이 대단해요. SNS가 없어서 우리가 주목받았구나 싶었죠(웃음). 저는 한 번도 이름을 좇은 적이 없고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숨은 실력자를 찾아서 함께했어요. 더 이상 쟁여놓은 음악은 없을 거예요. 육체적으로도 강해져서 어떤 음악이 나올지 되게 설레요. 아직 꿈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으로만 기억되어도 감사하다고 한 그는 음악에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낭만을 찾아 소년의 심정으로 청년의 심장을 말한다. “초심으로 진심을 다해청춘의 시간을 살아가는 진정한 이야기꾼의 음악은 그래서 여전히 능동태이다. 언제나 녹슬지 않은 언어로 삶을, 세상을 양각과 음각으로 빚어내기에. 그 말들이 공명하는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 모두 ‘Feel Good’이다.

. 김신영 편집장

사진 제공. 필굿뮤직(FeelGhoodMusic)

 

 

*프로듀서 랍티미스트, 윤미래, 비지, 도끼, BTS 힙합 타이거JK 음악에세이 월간에세이 에세이 음악인생 삶의명암 초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