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내 안의 어머니 / 이두아, 변호사·前 국회의원

탈무드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문득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 최초의 가장 소중한 만남’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어머니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든 당사자의 기도보다 더 간절하고 유효한 기도를 어머니의 기도라고들 합니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저에게 묻는다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어머니의 기도였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를 키운 것은 어머니의 기도이기 전에 어머니와의 만남 자체가 그 기도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슬하에 남매를 두셨습니다. 저는 그중 첫째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노산인 마흔이 넘어서야 저를 보시고, 그다음 해에는 제 남동생을 얻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팔공산 갓바위에 기도를 올리고 나서 늦은 나이에 저와 동생을 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남매를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아이들이라고, 저희 남매와의 만남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기도 덕분에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형제분들이 잘 성장해서 다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외증조할머니의 기도 덕분에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형제분들도 일제 강점기,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험한 일을 덜 겪을 수 있었다고 강하게 믿으셨다고 합니다. 외삼촌 두 분 모두 공직 생활을 하셨는데, 특히 작은 외삼촌은 사법시험이 ‘고시’라고 불렸던 시절에 합격해서 고등검찰청 검사장까지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의 인생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기도와 그 힘을 굳게 믿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기도를 믿었고, 외할머니는 외증조할머니의 기도의 힘을 믿으셨던 것입니다. 그 선대(先代) 어머니들 또한 그 힘을 믿으며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인생의 고단함을 꿋꿋하게 이겨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시험을 볼 때도, 사법시험을 볼 때도, 그리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될 때도 그 시간 내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도하며 저를 응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인생에서 큰 성취를 이뤄내게 될 때면 늘 어머니의 기도와 함께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기도 소리를 들으며 이것이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의 도움과 사회의 혜택 덕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성과 사랑을 쏟아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늘로 백일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제가 가장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 순간은 바로 아침에 눈뜰 때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이면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어머니의 부재가 절실히 와 닿으며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제게 마법의 주문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기도로 눈을 뜨면서 ‘오늘도 힘  내야지’하고 마음먹었고, 저녁마다 기도 소리를 들으며 ‘내일도 평안한 하루가 될 거야’라고 믿었습니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며 기운을 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한 저는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있으며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으며 제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저와의 만남이 있기 전부터 저라는 존재를 위해 계속되어 왔지만, 그 기도와 저의 진정한 만남은 제가 인생의 고단함을 깨달으면서 찾아왔습니다. 뜻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정신적인 동굴에 들어가서 힘들어했던 시간이 켜켜이 쌓일 때 말입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원하는 일을 이루기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제 인생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기나긴 인생에서 때때로 넘어지기도, 길을 잃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머니의 기도 소리는 없지만, 그 기도의 힘은 제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 힘을 믿으며 어머니의 기도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겠습니다. 오늘도 어머니와의 만남을 떠올리니 어머니가, 어머니의 음성이 더욱더 그립습니다.

 

*1971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학교 법합 학사.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총괄간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원내대변인,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제18대 국회의원 역임.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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