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마음이 묻고 클래식이 답하다 / 송하영, 피아니스트

내 아버지*는 지휘자셨다. 그것이 내가 음악가로 성장하게 된 유일한 이유였다. 아버지는 슬하의 2남 1녀 중 한 명은 꼭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하셨으므로 그 뜻을 따라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피아노를 쳤고, 마침내 유학길에까지 올라 오늘까지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살고 있다. 그러나 자라면서 갖게 된 내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만큼 나는 책을 사랑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문학소녀’였던 것이다. 

예고 재학시절 교환교수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를 갔고, 이듬해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진학했다. 7년의 유학 시절, 나는 많이 외로웠다. 고독했다. 생활은 낯설었고, 온 세상 천재들이 다 모인 것 같은 학교에서의 공부는 벅차고 힘들었으며, 그런 나에게 가족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절대고독. 그 속에서 나를 위로한 것은 ‘우리말’로 된 책들. 엄마가 보내주시던 소포 안에는 늘 요긴한 생필품과 많은 책이 있었다. 그 문학 작품과 인문 서적 등을 읽으며 타협조차 불허된 절대고독 속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문학적 스토리를 음악에 녹여내고자 노력했고, 연주에 담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소리의 나열이 아닌, 음악은 반드시 감동이어야만 하기에. 보이지 않아 구체화할 수 없는 소리에 감정을, 더 나아가서는 진심의 이야기를 담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연습’, 그리고 ‘연습.’

기계적인 반복만이 계속될 것 같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습은 단순한 훈련이 아닌 예술의 연마와 완성을 위한 ‘연습’이므로 사실 테크닉의 문제는 음악가에게 가장 하위 단계의 과제에 속한다. 소리에 내 마음을 담는 것, 내 연주에 진심을 담는 것. 그리하여 결국 나의 마음이 소리에 얹혀 관객에게 부디 전달되기를. 그것이 연주자들의 연습과 훈련의 핵심이다. 음악가의 딸로 태어나 숙명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으나 지독하게도 독서를, 문학을, 철학을 사랑했던 나의 인문학적 감수성은 연주에 비단 소리만이 아닌 ‘진심’을 담아야만 한다고 믿게 했다. 나에게 ‘진심 없는 소리’란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작품은 엄밀히 말해 연주자의 것은 아니기에 연주에 담기는 ‘진심’이란 결국 ‘타인의 진심’이다. 백지 위에 새로이 글을 쓰는 문학이나 그림을 그리는 미술과는 달리 음악의 ‘연주’는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연주자의 손끝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므로 타인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은 연주의 가장 첫걸음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타인인’ 작곡가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에 나의 문학적 감수성은 큰 도움이 되었다.

역사 속 많은 음악가의 삶을, 위대한 창작물을 인류에 남긴 대단한 사람들이란 선입견을 거둬내고 들여다보면 위대한 천재들의 삶도 그저 다들 기구했을 뿐이다.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이상의 소설 <날개>의 첫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천재 모차르트, 지음무성(至音無聖), 지극한 소리는 오히려 그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삶으로, 음악으로 실현한 악성(樂聖) 베토벤, 가난하고 또 가난한 삶을 살다 서른도 못 채운 비운의 짧은 삶을 매독으로 떠난 슈베르트,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아내인 클라라와 많은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야만 했던 병약한 정신의 슈만, 클라라를 남몰래 연모한 슈만의 제자 청년 브람스 등.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각각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사무치는 진심을 쏟아부어 창작한 영혼의 산물인 그 음악이 마찬가지로 각 사연을 가진 우리의 삶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반드시 어떠한 치유의 힘을 갖는 것은 지당하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 무너지고 다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부지기수다.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상처를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나날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클래식 음악에 녹아있는 삶의 대서사가 모두의 귀를 통해 각자의 마음에 전달되기를. 그리하여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치유와 평안’이 분명히 존재함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고, 경험할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피아니스트로서 가진 마지막 꿈이다.

* 故 송석우, 고려교향악단, 춘천시향 상임 지휘자 역임.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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