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걷는다는 것은 / 강지만, 화가

하루 중 걷기는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간이다. 대부분 해가 지기 전 오후 4~5시쯤에 길을 나서곤 한다. 길을 나서기 전 외투에는 반드시 메모장과 볼펜이 들어있어야 한다. 걸어 다니면서 작업(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르면 간단한 스케치를 하기 위한 나만의 습관이다. 하지만 실수로 메모장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이면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것처럼 귀가하는 시간까지 이내 마음이 찝찝하다. 

걷는다는 것은 적당히 따분한 과정이기에 20분쯤 걷다 보면 딱히 힘을 쓰지 않아도 생각에 몰입하게 된다. 물고기에 입질이 들어오듯 새로운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오르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간단한 글과 스케치로 그 순간의, 그 찰나의 기록을 남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기능에 그리기와 메모가 있어서 활용 가능하기에 편리하긴 하지만, 서로 다른 물질에 물성이 만나 전달되는 일차원적인 아날로그 매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만일 일정이 바쁘거나 해가 저물어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는 작업실에 있는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걸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다고 해서 쾌청한 날에만 밖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다. 당분을 머금은 공기에 찜통 같은 장마에도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상쾌하고, 또한 수북이 쌓인 눈길 위에 먼저 내디딘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걷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바깥 풍경은 내 안의 편향적인 생각과 굳어있던 감정을 느슨하고 유연하게 마사지해주는 것 같다. 거친 땅과 일으키는 마찰을 느끼며 허리까지 올라온 풀을 매만지며 걷는 것도, 비 오기 전 휘감는 바람을 느끼며 걷는 것도, 와인 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에 감탄하며 사색과 함께 걷는 것도, 무심하게 듣기 좋은 피요네(Fjordne, 일렉트로닉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잠시 생각을 내려놓고 멍하니 걷는 것도(음악 선곡에 따라 풍경도 달라진다) 일상의 행복이다. 이렇게 내면의 풍경을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모든 대상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시골이 도시보다 걷기에 좋지 않기도 하다. 마트나 철물점에 간단히 장을 보려고 해도 이륜구동 원동기나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므로 도시에서보다 동선이 현저히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 적극적인 루틴을 설정하지 않으면 작가에게는 더욱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환경인 셈이다. 다행히 1km 정도 거리에 대학이 있어서 가급적 그곳에서 걷기를 하는 편인데, 얼마 전 교문 밖 플랜카드에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통제 사항이 있어서 한동안은 옆 마을을 걸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간식을 챙겨서 옆 동네 개들과 친해져야 한다.

우리 인류는 먹고살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먼 거리의 대륙과 대륙을 이동하며 살아왔다. 사냥할 때는 30~40km는 족히 걸었을 텐데, 그렇게 생존을 위해 이동했을 걸음이 지금은 건강을 지켜야 하는 걸음으로 바뀌게 된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걸음이란 생존과 다름이 없다. 걸으면서 생각에 빠지게 되고, 다양한 생각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걷지 않고 아이디어가 샘솟게 된다면…. 새삼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 생각을 위해 걷는다는 것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일상의 중요한 시간이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극히 생산적인 일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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