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마음을 담다] 다시 꽃은 핀다 / 오충근, 사진작가

2년 전 봄에 그동안 해온 여행 사진 찍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에는 매달 한두 번씩 해외로 나가던 여행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일을 그만두고서도 한동안 여행을 가지 않아서 내심 정말 좋았다. 하지만 제 버릇 못 버린다고 다시 곧 여행이 생각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삽시간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버렸고,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눈이 녹고 날은 풀렸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득, 10년 전 이맘때 여행 잡지 촬영차 떠났던 도쿄 여행이 생각난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가슴 설레고 정다운 지인과의 만남은 늘 가슴 훈훈하다. 허물없이 가까우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사진가 선배와의 동행 취재였다. 팀별로 나눠서 진행된 취재이기에, 선배와는 하루해가 진 다음에야 오작교를 건너는 견우직녀처럼 만날 수 있었다. 캔 맥주와 안줏거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보따리를 밤새 풀며 그렇게 피로를 풀었다. 

도쿄 시내의 야경 스케치를 위해 함께 신주쿠역으로 촬영을 나갔다. 1시간 정도의 촬영을 끝내고 모처럼 한가하게 신주쿠를 다니다 보니, 남자 둘이서 여간 심심한 게 아니었다. 함께 취재 온 선배 기자가 일본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아카사카의 한 선술집으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화기애애한 선배와 그녀의 여섯 친구들 사이에 앉아 그리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부드러운 거품이 일품인 일본 생맥주와 여러 종류의 사케, 맛있는 일본 안주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다들 얼큰하게 취할 무렵에는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운 눈치들, 한 친구가 2차를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땠을까. 평소에는 비싸서 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도쿄의 택시를 덥석 타고 여섯 친구가 함께 사는 공유 하우스로 들어갔다.

아담한 주택 안에는 여러 개의 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치 시트콤에 나올 법한 집에서 2차를 이끌었던 친구가 냉장고를 털어 한국인 친구를 위한 스페셜 요리를 만든다며 야단법석이었다. 그를 제외한 우리 8인은 다시 토크 대회를 방불케 하듯 이야기에 열을 올렸고, 그 사이 스페셜 요리를 포함한 상이 거하게 차려졌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탕이었지만,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스고이”를 외쳐댔다. 열정적인 밤을 지새운 여파로 다음 날 촬영이 힘들었지만 뭐 어떤가. 이처럼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도쿄에 대한 행복한 기억만 남게 해주었다.  

지금은 모두 멈춰졌지만, 따뜻한 봄이 되니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여행 중이다.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모두 한데 모여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진정한 봄이 오길 기다려본다. 한 편의 시와 함께 오늘의 봄길을 걸어가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정호승의 시 ‘봄길’)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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