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시간의 기억, 기억의 시간 / 김겸, 보존복원 전문가

문화예술은 삶을 기록하는 기억들의 투쟁이다. 그 기억의 편린들은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수없이 되살려지고 되살아난다. 잃어버린 시간, 잊힌 기억은 어떻게 복원되고 보존되는 것일까. “유물은 오직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만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느 날 시간의 행간에 걸린 한 문장은 예술과 삶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놓았다. 보존복원 전문가 김겸 박사(53)의 글밭에는 시절과 시대를 통과한 삶의 문장들이 피어있었다. 25년간 수많은 예술작품, 유물에 담긴 역사에서 서사를 읽어낸 그는 흩어진 플롯을 보완하며 가치를 회복시켜왔다. 작품이라는 타인의 방에 홀로 앉아 작가의 전언을 체청하며 시간의 조각을 완성해온 것.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새겨온 투철한 생의 서사를 펼쳐본다.

“미술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답이 없는 여정이라 계속 질문을 던지며 여러 생각을 갖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온전히 교감하지 못하게 된 불안정한 상태가 될 때 손상된 작품, 아픈 작품이라고 표현합니다. 복원가는 작품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 역사성을 고려하여 의도치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 시간성을 회복합니다. 시간성의 가치는 인류가 문화를 감상하고 기록한 것의 역사와 함께하죠. 오래된 것이 어떻게 예술에서 드러나는가, 그 역사성이 바로 고색(古色)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무기물도 황변하여 노란색을 띤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이 누르스름해진다는 얘기죠.” 

잘 알려진 대로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앙투안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해 로댕,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안젤름 키퍼, 헨리 무어, 호안 미로,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이우환 등 수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시간의 간극을 메웠다. 특히 2015년에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가 복원됐는데, 역사의 한복판에서 밀려온 한 짝의 운동화는 김숨의 소설 (2016)의 언어로, 영화 <1987>(2017)의 세계로 연결되었다. 잊어버린 한 개인의 사물을 통해 잃어버린 역사의 시간을 되찾게 된 것이다.

“복원가는 물질을 통해 드러나는 가치를 다룹니다. 작품과 유물이 생겼을 때의 시간의 선로, 궤도 위에 올려놓는 것이 제 일입니다. 이한열 운동화 작업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평생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가치 복원에 대한 믿음을 구체화했으니까요. 동시대인으로서 사명감이 컸다기보다는 한 공간에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정이 들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사물에 담긴 이야기와 깊은 정이 든 거죠. 그 모든 것의 시작이 한 분의 생명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감사함이 곧 미안함으로 변했죠.”

이 시대의 르네상스 맨인 그의 예술적 원체험은 아버지(김수익 화백)에 의해 구성된 일상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작업이 곧 삶이었던 부친의 모습, 수많은 작품과 미술 서적 등에 둘러싸인 유년의 들녘은 내면 풍경까지 풍성하게 만들었다. 정신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고 묵묵히 자기 안의 길을 따르며 걸어올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서사를 확장해온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인문학 강연 ‘피아노가 있는 미술 이야기’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인간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는 예술의 다양한 의미 가운데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방법으로서의 예술’을 권해드립니다. ‘나는 시간을 참 잘 보냈어’가 쌓이면 ‘나는 잘 살았어’가 되는데, 하루를 잘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죠. 그동안 작품을 복원했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운동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작은 모임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사는지, 이 땅에 나와서 나를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는 살 만한지, 이런 가치에 대한 의미가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공간의 이름은 글리아(Glia). 뇌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아교세포(글리아세포)에서 따온 것으로, 균열이 생긴 사람들의 마음을 아교(Glue)처럼 이어 붙이고 싶다는 의미라고 한다. 순간,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엄숙히 지켜온 그의 선한 의지가 봄날의 햇살에 실려 오는 듯 했다. 결국 ‘무엇을 복원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수렴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 곁에 있는, 앞으로도 있을 익숙함을 전제로 하니까요. 서양과 우리는 소유물에 대한 상념이 다릅니다. 우리는 전쟁과 역사로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죠. 저는 유럽처럼하자는 게 아니라 잘 보존하고 간직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하자는 입장입니다. 어떤 분야든 가장 합당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대충, 쉽게, 빨리빨리 변화하는 속성으로 진행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적어도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보존복원 문제는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수준으로 귀착된다. 그렇다면 시간을 다투며 시간을 다루는 보존복원 전문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화학적·인문학적 지식, 미학적 관점, 작업에 대한 열정이 전제돼야겠지만, 기본은 ‘기술’이다. 귀한 것을 알아보고 귀하게 대접할 줄 아는 태도는 여기에 기인한다. 태도가 가치를 만드는 것. 난치 혹은 불치 판정을 받은 작품들이 그를 찾아오는 것도 의술과 인술로 빚어진 손길과 마음길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보존복원은 학문적·기술적 기록이 있는 분야인 만큼 먼저 이를 배워야 합니다. 작품에 직접 손을 대고 개입하는 과정을 거치니 기술적인 부분이 최우선이죠. 의사에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엄성 등 윤리적인 측면도 필수적이겠지만, 무엇보다 의료 교육이 선행돼야 하듯이 말입니다. 이 일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고된 작업을 요합니다. 다른 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새벽 두세 시에 내려와 작업하고, 다음 날이면 다른 것이 보이고…. 약속 직전까지 24시간을 생각하며 하다 보니 제 머릿속은 일정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죠. 25년간 해왔어도 늘 아쉬움이 남는데, 이젠 이런 마음을 좀 내려놓고 싶습니다.”

지나온 날들은 다가올 날들에 자리를 내어주며 오늘을 통과한다. 정지가 아닌 휴지(休止)로서의 시간을 회복하며. 그 흘러옴의 흘러감 속에서 시간은 태생적으로 변화를 수반한다.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진지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삶의 어떤 글을 어떻게 탈고하게 될까. 하나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길을 내고 빛을 내고 있었다. 

 

글·사진 김신영 편집장

작업 사진.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제공 

 

* 김겸,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문학동네, 2018, p.248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전공하고, 일본과 영국으로 건너가 보존복원 공부를 했다. 일본 기비조각수복소, 삼성문화재단 보존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팀 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개소 10주년’을 맞은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로서 보존복원 작업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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